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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43

[한국사요약 2편] 이성계와 이방원이 피로 세운 조선 고려말 왕권은 바닥에 떨어지고 친원파들 때문에 나라는 망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이성계 장군에게 명령했다. "중국에 있는 요동 땅을 가져와라" 이성계 장군은 어쩔 수 없이 왕의 명령으로 요동정벌을 출발해 위화도 섬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기에 다시 돌아간다. 이것이 '위화도 회군' [한국사요약 2편] 이성계와 이방원이 피로 세운 조선 이성계는 친원파들을 경멸하며 혁명을 꿈꾸는 신진 사대부 정도전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키고 고려를 무너뜨리고 대망의 '조선'을 건국한다. 이것이 500년 조선역사의 시작이다.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을 끼고 개혁을 이끈다.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백성들을 잘 돌보기 위해 노력하며 조선의 틀을 잡아갔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이성계는 왕위를 막내.. 2022. 8. 22.
[한국사요약 1편] 고조선의 시작과 고려의 멸망 아주아주 먼 옛날 환인(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위해 인간세상에 내려오게 된다. 그때,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서 인간이 되고싶다고 투정을 부리니까 환웅 : "음.. 100일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 인간이 되게 해줄게 ^^ " 하지만 중간에 호랑이는 포기하게 되고 곰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단해.. 그렇게 곰은 여자(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고 단군을 낳았다. 바로, 단군할아버지 [한국사요약 1편] 고조선의 시작과 고려의 멸망 #고조선 이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우는데, 이를 "조선(고조선)" 이라 불렀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세운다 이때는 청동기시대로 벼농사도 짓고, 계급도 나뉘고, 고인돌(무덤)도 만들던 시기다 그 후에 무기가 발달하게 되.. 2022. 8. 21.
조선 악녀가 낳은 '작은악녀' _ 호명옹주 (이 글은 이전 포스팅 '조선왕조가 인정한 악녀 _ 소용 조 씨'와 연관되는 내용입니다.) 조선 제16대 왕 '인조' 인조라는 임금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인물이었다.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뒤 왕위에 올랐지만 곧바로 '이괄의 난'이 터져 도성을 떠났고 다음으로 '정묘호란'이 터져 또다시 짐 싸서 피난을 갔고 이번엔 '병자호란'이 터져 피난을 떠난 거의 '피난 마스터'였다. 특히 병자호란 때 청나라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라는 한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는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었다. 역대 조선에서 당할 치욕이란 치욕은 혼자 독차지하였다. 삼전도의 굴욕이 있은 후 궁으로 돌아온 인조였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왕비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자식들까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기.. 2022. 8. 19.
임진왜란 시리즈 Ep.05 대동강 전투와 잊어선 안될 영웅 '원연' 유인작전에 휘말려 허무하게 임진강 방어선을 날려버린 덕분에 왜군은 손쉽게 평양을 향해 진격했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대동강이라는 거대한 강을 사이에 두고 방어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평양에 있던 선조는 명나라와 맞닿아 있는 의주로 피난 가면서 세자 광해에게 '분조'를 명한다. "오늘 이후로는 세자로 하여금 국사를 임시로 다스려 관작의 제배나 상벌 등의 일을 모두 편의에 따라 스스로 처결할 일로 대신들에게 이르라." -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13일 신축 8번째 기사 - 그렇게 조정은 둘로 쪼개져 세자에게 왕의 임무를 맡기고 바로 떠나버린 선조였다. 임진왜란 시리즈 Ep.05 대동강 전투와 잊어선 안될 영웅 '원연' 이때 광해군은 정말 멋쟁이 그 자체였다. 아버지와는 달리 평양성에 머무르며 .. 2022. 8. 17.
임진왜란 시리즈 Ep.04 조선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용인전투' 전라도 관찰사 이광 1592년 4월 13일 (음력)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당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왜군은 경상도를 부시며 진격하였고 조선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전쟁이 시작된 지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당시 임금 선조는 누구보다 빨랐다. 이미 나라 버리고 망명을 위해 ‘의주’까지 튀어버렸고 이에 조선의 왕을 잡으면 모든 게 끝날 것이라 생각한 일본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한양이 점령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 사나이가 한양을 탈환해야겠다는 용맹한 의지를 다지게 된다. 바로 '이광’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광은 신속히 근왕군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근왕군의 수는 전라도에서만 4만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충청도에서 8천 명이 합류했고 경상도 .. 2022. 8. 15.
임진왜란 시리즈 Ep.03 잘못된 선택의 눈물 _ 임진강 전투 이일이 상주 전투에서 대폐 하고 믿었던 신립마저 탄금대 전투에서 패전한 상황에서 왜군은 한양으로 들어갔다. 조선의 임금 선조만 잡으면 이번 전쟁은 게임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조는 왜군의 예상과는 한참 다른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미 짐 싸서 북쪽으로 도망간 건 오래였고 왕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는 건 전혀 예상 못했던 왜군은 "도망도 하나의 전략이구나!" 라며 감탄에 빠졌다. 그리고 무조건 선조를 잡겠다고 북진한다. 한편 조선은 다시 13,000명 정도로 병력을 끌어모아 임진강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엉망진창.. 이게 전투인지 코미디인지 모를 답답한 패전이 시작된다. 임진왜란 시리즈 Ep.03 잘못된 선택의 눈물 _ 임진강 전투 # 김명원의 부진 한강에서 헛짓하던 인물이 또 .. 2022. 8. 13.
임진왜란 시리즈 Ep.02 _ 이순신 발목잡은 이일과, 답도 없는 김명원 이야기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일본은 파죽지세로 경상도를 함락하고 북진하였다. 그리고 '신립' 부대가 왜군과 붙고 패하기 전 선조는 유능한 장수랍시고 한 장군을 파견하여 왜군을 막게 한다. 바로 이일 신립과 마찬가지로 북방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는데 사실 조선을 통째로 말아먹을 뻔 한 인물이었다. 임진왜란 시리즈 Ep.02 _ 이순신 발목잡는 이일과, 답도 없는 김명원 이야기 이순신 장군이 임관 초 북방에서 만호로 근무하던 무렵, 이일은 북방사로, 이순시의 직속 상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1000명에 달하는 여진족이 조선인 마을을 급습해 물자를 약탈하고 백성들을 납치했는데 책임자였던 이일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버렸다. 이순신 장군은 혼자 남아 60명의 군사로 1000명의 여진족을 격퇴했고, 이후 군사를 이끌고 여진.. 2022. 8. 8.
임진왜란 시리즈 Ep.01 _ 안타까운 영웅 '신립'의 탄금대전투 어느 날 조선 중기의 무신 '신립은' 산에서 사냥하다 그만 길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슬프게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그 여인에겐 매우 딱한 사정이 있었는데 종 한 명이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여인만 살려둔 것으로 여인은 종의 아내가 되던지 아니면 종의 손에 죽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신립은 그녀를 지켜주겠다 약속하였고 한밤중에 나타난 종을 활로 쏘아 죽이게 된다. 그러고 이만 가려는 신립에게 여인은 간곡히 부탁했다. "이제 저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제발 저를 거두어 주시지요" 하지만 이미 혼인한 몸이었던 신립은 이 부탁을 거절하며 떠났고 절망에 빠진 여인은 이튿날 집에 불을 지르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은 조정의 명을 받들어 일본군과 싸우기.. 2022. 8. 4.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후편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1592)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과대망상증 환자에 몽상가였던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먼저 조선의 왕 '선조'를 잡고 편하게 명나라를 친 다음 천하를 다스리겠다. 그런데 웬걸? 선조가 잽싸게 줄행랑쳐버린다. 아예 명나라로 망명까지 하려고 한다. 이러한 선조를 향한 백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와중에 다행히 왜구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간 선조를 잡지 못했고 덕분에 전쟁은 장기화된다. 그리고 이순신의 전설이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후편 그동안 조선에서 유일하게 전쟁준비를 철저하게 한 이순신은 왜구가 침략했단 소식을 듣고 전투태세를 갖추게 된다. 1592년 5월 4일. 첫 출전 왜구들은 약탈과 방화가 특화되어있는 못돼 먹은 아이들이었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 2022. 7. 26.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전편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라치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하였으며,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하여 어른들도 꺼려 감히 그의 문 앞을 지나려 하지 않았다. 여름에 참외밭을 지나가다가 참외가 먹고 싶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는데, 이에 화가 난 그는 집에 가서 말을 타고 참외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후엔 참외 밭주인이 그에게 참외를 거저 주고 싶어 했다. 놀이를 할 때 방해가 되면 어른들의 눈을 향해 장난감 활을 쏘려 하고 참외 안 준다고 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귀여운 골목대장 소년. 이 개구쟁이 어린아이는 훗날 조선을 구한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이 된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영웅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취업준비하는 이순신 1.. 2022. 7. 20.
대한민국의 자부심 '거북선'의 진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 대사를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한 사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1592년부터 약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며 세계 해전사에 독보적인 기록을 남긴 장군이기도 한데,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떠올릴 때면 떼놓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거북선 배 앞머리에 달린 용머리 철갑으로 둘러싸인 천장 선체 양옆에 달린 포, 과거 사용했던 5원짜리 동전이나 500원짜리 지폐에도 거북선 그림이 들어 있었다 하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북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 2022. 7. 16.
고려 공녀의 인생역전 _ 기황후 원나라 옛날 몽골 제국이 중국을 장악해서 세운 나라인데 이때 원나라의 영토 크기가 진짜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아시아 역대 국가 중 가장 넓은 영토였다 하는데 진짜 이 시대는 원나라가 전 세계 원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고려 공녀 출신이 황후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 있었다. 드라마로 접해서 더욱 친숙한 기황후인데 그런 이 기황후는 어떻게 고려 공녀에서 황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기황후가 황후에 오른 뒤에는 고려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고려 공녀의 인생역전 _ 기황후 때는 시간을 거슬러 원나라가 세워지기 전 몽골 제국이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때였는데 (칭칭 칭기즈칸 ~) 몽골은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고려 역시 피해 갈 순 없었는데 1231년 고종 18.. 2022. 7. 14.
조선왕조가 인정한 악녀 _ 소용 조씨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 그런 인조의 정실부인 '인열왕후' 인조는 이미 후궁들이 있었으나 정치적 문제로 후궁을 더 들이게 된다. 이때 인열왕후는 본인이 직접 구미에 맞게 후궁을 고르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본인을 위협하지 않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 그녀는 몰래 형부 '정백창'이라는 사람에게 부탁하였고 1630년 정식 절차가 아닌 부정한 방식으로 '조 씨'와 '김 씨' 두 명의 어린 여인들이 궁녀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인조는 생각했다. "조 씨가.. 예쁘구먼" 한편 이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여인들이 왕의 후궁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하들이 들고일어나게 된다. "부정한 방식으로 후궁을 들이면 국가가 망할 조짐입니다. 중개한 사람을 벌하고 그 여인들은 내치소서" 싫은데..? 조씨가 예뻐서였을까 인조.. 2022. 6. 28.
평생 쓸쓸히 살다 떠난 비운의 왕비 _ 정성왕후 숙종과 무수리 최 씨 사이에서 낳은 아이 연잉군 (영조) 그의 어머니인 무수리 최 씨는 궁에서 청소일을 하던 몸종 출신이었다. (장희빈 포스팅 참고 ) 이처럼 어머니가 미천한 무수리 출신이었기에 연잉군은 훗날 '영조'로 왕위에 올라서도 정통성에 있어 큰 콤플렉스를 지닌 왕으로 유명하다. 이런 그에게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한 비운의 왕비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조선왕실 가장 쓸쓸한 삶을 살았던 정성왕후였다. 평생 쓸쓸히 살다 떠난 비운의 왕비 _ 정성왕후 1724년 31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영조' 그는 어릴 적 11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 부인이 바로 '정성왕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부부의 관계는 역사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영조는 왕이 된 후에 그녀가 정실 왕비임에도 창덕궁으로 보내버리.. 2022. 6. 24.
조선 최고의 기생 _ 황진이의 삶 1500년대 중종 시기 송도(개성)에서 세상 제일가는 미녀가 존재했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녀를 마주치는 순간 오금이 지려버릴 것이다." 이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어느 한 총각이 그녀를 보기 위해 몰래 담을 넘어 그녀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불 켜진 그녀의 방을 슬쩍 보게 되는데 세상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에 고운 눈, 코 , 입 풍기는 자태가 실로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 숨도 쉬지 못할 미모의 이 여인이 바로 '황진이'였다. 조선 최고의 기생 _ 황진이의 삶 양반집 댁 ' 황 진사'의 딸로 태어난 황진이. 어린 시절부터 워낙 총명하고 영특했던 이 여인은 이미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을 독파했고 시와 서예 그리고 음악에도 특출 난 재능을 보였으며 특.. 2022. 6. 21.
굶주림 앞에선 '인륜'이란 없었다 _ 경신대기근 거리에 먹을 시체들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울 힘도 없던 어린 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어머니가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고기 냄새였다. 얼마 만에 먹는 고기인지 어머니와 나는 그 뜨거운 고기탕을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오랜만에 먹은 식사에 무척이나 기뻤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우리는 굶주림에 고통받아야만 했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만 같은 시간이 지속됐다. 어느 날 저녁 초점을 잃은 눈으로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도 동생처럼 잡아 먹히게 될 것을.... 굶주림 앞에선 '인륜'이란 없었다 _ 경신대기근 1600년대 중반 태양열이 감소하여 지구 온도가 약 1도 낮아지게 된다. 이른바 '소빙하기'가 찾아오.. 2022. 6. 19.
대한민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이유 사형? 우리나라는 이미 사형 폐지국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일 텐데 사실 대한민국은 아직 사형 폐지국가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라고 한다. 이 말은 아직 사형제도가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사형수는 존재하지만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왜 사형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걸까? 대한민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이유 사형이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해 사회로부터 영구히 제거시키는 법정 최고형으로 현재 많은 논란이 되는 형벌인데 사형제도 '폐지'와 '집행'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현재까지도 시끄러운 상황이다. 이에 1996년과 2010년 헌법 재판소에서 사형제도에 .. 2022. 6. 13.
조선 파국의 중심 _ 명성황후 "신이(제가) 전국의 억만 백성의 입을 대신하여 자세히 진술하겠습니다.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무녀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 아! 저들의 극악한 행위가 아주 큰 데도 전하께서는 문책하지 않으며 마치 아끼고 비호하는 것처럼 하니 백성들의 마음이 어찌 풀리겠습니까" 많은 백성들이 입을 모아 비난했던 고종과 민비를 조종하며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한 무녀의 이야기. 조선 파국의 중심 _ 명성황후 때는 1882년 명성황후 즉, 민비와 민 씨 일가들이 조선의 실권을 누리게 되고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였다. 이는 양반자제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의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 2022. 6. 10.
미치도록 사랑한 노국공주가 죽은 후 공민왕이 벌인 충격적인 일들 어지러운 고려 말 시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군주.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뒤 미쳐버리게 되고 믿을 수 없는 짓들을 해버린 최악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군주 공민왕 오늘은 공민왕의 이야기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 원나라가 세상을 지배하고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즉, 고려 왕실이 원나라 황실의 사위 집안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민왕 또한 원나라에 볼모로 가있던 시기에 20살의 나이로 원의 공주인 '노국대장공주'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사실 그 동안 고려의 왕비가 원나라 공주들은 남편인 고려 왕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대부분의 왕비들은 고려를 감시하는 원의 스파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민왕은 달랐다. 다른 왕들과 달리 그 흔한 후궁 한 명 들이지도 않았고 오직 노국공주.. 2022. 6. 9.
조선시대 아이를 낳지 못한 왕비(중전)의 삶 요즘은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들도 있을 정도로 조금씩이나마 인식이 달라지고 있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일이었다. 특히 아들을 꼭 낳아야만 하는 의무 같은게 있었고 그러다 보니 아이를 못 낳은 부부. 특히 여자의 경우 꽤나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많이 느껴봤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러한 분위기였는데 조선시대. 그 시절의 왕의 아내, 즉 중전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아들을 낳지 못하면 후궁을 데려와서 낳고 했던 건 어느 정도 알겠지만 그 중전의 대우가 어땠을지 생각해본적 있는 사람? 그래도 중전인데 뭘 어쩌나, 그냥 똑같지 Or 후계자를 못 낳았으니 입이 있어도 할말없지 이 정도로 의견이 갈릴 듯 한데, 결과적..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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