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라치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하였으며,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하여
어른들도 꺼려 감히 그의 문 앞을 지나려 하지 않았다.
여름에 참외밭을 지나가다가 참외가 먹고 싶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는데,
이에 화가 난 그는 집에 가서 말을 타고 참외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후엔 참외 밭주인이 그에게 참외를 거저 주고 싶어 했다.
놀이를 할 때 방해가 되면
어른들의 눈을 향해
장난감 활을 쏘려 하고
참외 안 준다고 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귀여운
골목대장 소년.
이 개구쟁이 어린아이는 훗날
조선을 구한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이 된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영웅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취업준비하는 이순신
1545년
상당한 명문가 집안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순신은
어린 시절을 대부분
서울 건천동에서 보냈는데
소년기에는 외가인
충남 아산에서 지냈다.
그는 예상과는 달리 처음엔
무과가 아닌 문과를 공부했고
그렇기에
예술적,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다.
그러다 22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명문가 집안의
방씨라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이순신은 그의 장인어른
'방진'의 영향을 받아
무과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그렇게 6년간의 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하여
28살이 되던 해
첫 무과시험을 치르게 된다.
워낙 뛰어나서 당연히
별 문제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말에서 떨어져
왼쪽 정강이가 부러졌다.
하지만 그는 집념의 사나이
나뭇가지로 부목을 대고
시험을 끝까지 치르게 된다.
그러나 낙방
그렇게 다시 4년간
무예를 닦으며 준비를 한다.
1576년 32살이 되던 해에
다시 무과 시험을 치르게 된 그는
28명 중 12등의 준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나이에
관직에 진출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때 평균 합격 나이가
평균 34살인걸 보면 오히려
빠른 쪽에 가까웠다.
그렇게 그는
'권지훈련원봉사'라는 직책 즉,
말단 직원 군무원으로 첫 관직에
오르게 된다.
<권지: 벼슬 이름 앞에 붙어
그것이 임시직임을 나타내는 말>
올곧은 성품의 이순신
시간이 지나 승진을 거쳐
36세에 전라도 지역
'수군만호'라는 직책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그의 강직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의 상관인
'성박'이란 인물이 있었다
성박은 이순신에게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명령했다.
그때 이순신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나라의 재산인 나무를
벨 수 없습니다. "
아주 곧다.
그리하여 상관들은
말 안 듣는 후임 이순신을 미워하고
평을 나쁘게 남기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그의 성품을 알아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올바른 성품을 지닌 그는
능력 또한 출중했으니
나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여러 차례 하며
평범한 군무원 생활을 한다.
고난의 시작
그러던 1587년
43세 나이의 이순신에게
고난이 닥치게 된다.
이때 이순신은 녹둔도라는
북쪽 지역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이 지역이 북방 여진족들의
약탈과 침략이 잦았는데
지역을 지킬 병력이 너무 적었다.
그리하여 직속상관
'이일'이라는 사람에게
추가 병력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그때마다 거절당했다.
그러다 그해 가을
이순신은 군대를 인솔하여
추수를 위해 잠시 이동했다.
하필 이때 여진족들이 기습 침입하여
녹둔도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이 전투의 결과로
조선군 11명이 죽고
160명이 잡혀가게 된다.
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된
직속상관 이일은
책임회피를 시전 하기 위해
짱구를 굴리기 된다.
그리하여 먼저 이순신을 투옥한 뒤
조정에 보고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은 이순신의 잘못이니
이순신을 처벌하시옵소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 이순신은
목숨 걸고 항의하게 된다.
보고를 받은 조선의 왕 선조는
다행히
한 번의 실수로 사형은 과하다며
'백의종군'을 하게 하라 지시한다.
백의종군
:흰옷을 입고 군대에 복무함
즉 벼슬이 없는 말단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 참전함
벼슬 직책을 모두 내려놓고
말단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뜻하는 백의종군.
세상 억울한 고난과 불행이
닥쳤지만 그는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는데
다시 여진족들과의
2차 녹둔도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이때 이순신은
여진족 우두머리를
그 어렵다는 생포를 한다.
이날의 공을 계기로 복직이 되고
슬슬 유명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1590년
당시 조선의 왕은 선조였다.
그리고 선조가 세상 가장 신임하는
"류성룡'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조선에 신이 내린 천재였다.
이러한 천재 류성룡은
이순신의 능력을 알아보곤
미친 파격 승진을 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때 많은 신하들이
낙하산 OUT을 외치며 들고일어난다
어찌 보면 낙하산일 수도 있는 게
사실 류성룡은 이순신과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친구였다.
어릴 적부터 이순신과 함께 지낸 그는
이순신의 성품과 면모를 진작
알아봤기에 무조건적인 추천을 한다.
이때 이순신뿐만 아니라 권율 장군도
파격 인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선조 또한
이순신의 능력을 인정하여
초고속 승진을 시키기로 마음먹고
벼슬의 각 단계마다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 후진 없이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이순신은 1591년
47세의 나이로 전라도 지역의
해군을 총괄 지휘하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다.
이때도 많은 신하들이 이순신은
경험이 부족하다 반발했으나
선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이순신을 신입하였다.
그의 결정은 신의 한 수가 된다.
이순신은 부임하자마자
휘하에 있는 각 진의 실태를 파악하고
모든 병력동원 과정을
직접 관리하였다.
기존의 판옥선을 보수하고
돌격 전함 '거북선'을 개발하여
군비를 강화했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4월 12일 [양력 5월 22일] <신축>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거북함의 지자. 현자 포를 쏘았다.
1592년 4월 12일에
거북선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하루 뒤인 13일
왜구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흥미진진 다음편에 계속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전편
이미지 출처 : 불멸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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