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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3

힘들게 고향으로 돌왔지만 환영받지 못한 여인들 _ 환향녀 청나라에 붙잡혀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 그녀들은 타국에서 어떤 생각으로 버티며 살았을까.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들은 행복할 수 없었다. 오늘은 그녀들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포로로 끌려간 여성들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조선이 수많은 굴욕을 겪게 된 병자호란. 당시 도성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길 여기저기 시체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그 시체들 사이로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끔찍한 일은 이뿐만 아니었다. 조선의 임금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서 3번 절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항복을 행했다. 청나라는 항복의 대가로 수많은 남녀 조선인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조선의 인구 1000만 명중 60만 명이 포로였는데 그중 50만 명이 여자였다. 청나라 군인들.. 2022. 9. 15.
[한국사요약 4편] 조선역사 최악의 굴욕 _ 삼배구고두례 '인조'의 수모 _ 삼배구고두례 광해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 이때 후금에선 사이좋았던 광해를 몰아냈다는 명분으로 조선에 쳐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1627년)" 왕과 귀족들은 재빨리 강화도로 도망가고, 조선의 관군과 의병들이 평안도에서 후금과 맞서 싸웠다. 이때 후금은 명나라와 전쟁 중이었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조선이 좀 부담스러워 제안을 하게 된다. "우리를 형님의 나라로 부르겠다 약속한다면 전쟁을 멈추겠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였고 정묘호란은 끝나게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후금은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명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후금의 우두머리, '칸 홍타이지'는 자신을 황제로 높이고 국호를 청으로 바꾼다. 또한, 겸.. 2022. 8. 24.
조선왕조가 인정한 악녀 _ 소용 조씨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 그런 인조의 정실부인 '인열왕후' 인조는 이미 후궁들이 있었으나 정치적 문제로 후궁을 더 들이게 된다. 이때 인열왕후는 본인이 직접 구미에 맞게 후궁을 고르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본인을 위협하지 않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 그녀는 몰래 형부 '정백창'이라는 사람에게 부탁하였고 1630년 정식 절차가 아닌 부정한 방식으로 '조 씨'와 '김 씨' 두 명의 어린 여인들이 궁녀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인조는 생각했다. "조 씨가.. 예쁘구먼" 한편 이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여인들이 왕의 후궁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하들이 들고일어나게 된다. "부정한 방식으로 후궁을 들이면 국가가 망할 조짐입니다. 중개한 사람을 벌하고 그 여인들은 내치소서" 싫은데..? 조씨가 예뻐서였을까 인조.. 202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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