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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43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한국 비극사 6.25전쟁 '국민방위군 사건' 때는 1951년 6.25 전쟁 시기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UN군이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중이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은 1.4 후퇴를 실시하게 된다. 중공군의 대공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퇴각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이러한 성명을 발표했다. "전쟁이 우리의 자유독립을 위한 최후 결전 단계임을 선언하고 국민총력전으로 이를 극복하겠습니다." 중곡군과 맞서 싸우려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방위군'을 창설하였다. 지원 대상자는 17-40세 남성이었는데, 무려 50만 명이 넘는 장정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 걸고 지원하였다. 이들 중에는 ".. 2023. 1. 24.
연산군을 타락으로 이끈 원흉, 희대의 간신 임사홍, 임숭재 온갖 아부를 떨며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고, 백성의 삶보다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사리사욕을 채운 '간신'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나 국정을 농단한 희대의 간신들이 존재했다. 한 나라의 군주가 간신에 휘둘려 비극은 맞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사의 그 수많은 간신들 중에서도 전설급 간신이 존재했다. 임금에게 온갖 미녀를 바치다 못해 남의 첩을 빼앗아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여동생으로도 부족해 자신의 부인마저 바쳐버린 미친놈, '임숭재'였다. 왕실과 친인척을 맺으며 승승장구하던 임사홍 조선 역사상 희대의 폭군이라 하면 바로 '연산군'이 되겠다. 그리고 이러한 연산군의 타락을 적극적으로 도운 원흉이 바로 '임사홍'과 그의 아들 '임숭재'였다. 먼저 임사홍은 참으로 스펙터클한 인생을 살았다. .. 2022. 12. 5.
한반도 역대급 방탕했던 막장 임금 '충혜왕' 극악무도한 패륜은 기본이고 마음에 드는 여자면 (새) 엄마건 유부녀건 상관없이 일단 먼저 범해버렸던, 희대의 폭군 '연산군'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강간범으로 기억되는 왕. '충혜왕'의 이야기 원의 볼모로 잡혀간 "충혜왕" 1315년 고려의 임금 '충숙왕'이 귀여운 아들을 낳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충혜왕' 맏아들로 세자의 신분이 된 그는 13살이 되던 해에 어느 세자들과 마찬가지로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 된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왕이 되기 전 원 황제를 보필하고 원의 권력자들과 교류하며 원 황실에 대한 충성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려의 국왕이 가차 없이 교체되어버릴 정도로 원의 간섭이 심했던 시기였다. 충혜왕은 원나라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 2022. 11. 9.
임진왜란을 활약한 세자였지만 결국 폭군으로 전락한 '광해군' 임진왜란에서의 활약 전국 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천하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눈을 돌렸고, 195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부산에서 파죽지세로 북진해 올라오는 일본군을 보고 깜짝 놀란 '선조'는 재빨리 피난을 선택했다. 이때 개성, 평양을 거쳐 명나라와 맞닿아 있는 의주까지 도망을 간다. 사실 그동안 선조는 세자 책봉을 미루고 있었다. 선조의 중전 의인왕후는 아들이 없었고, 후궁의 자식들인 정통성이 없는 서자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는 본인의 아버지가 정통성이 없는 것에 대해 항상 콤플렉스였기에 오랫동안 세자 책봉을 미루어 왔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의주로 가기 전 평양에서 다급하게 서자 광해군을 세자 책봉하게 된다. "광해 너를 세자로 임명한다. 나는 북쪽의.. 2022. 11. 8.
마이산의 비밀 (쓰러지지 않는 돌탑,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전라북도 진안군에는 특이한 모양의 산이 하나 있다. 바로 , '마이산'. 거대한 암석으로 된 봉오리 두 개가 솟아오른 모양이 말의 귀를 닮아 한자인 말 '마' , 귀 '이'를 붙여 '마이산'이 되었다. 특이한 모양의 마이산과 더불어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마이산 탑사인데, 견고하게 세워진 돌탑들의 풍경이 경이롭다. 이런 이유로 2020년 CNN가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마이산 탑사의 돌탑들은 약 100전 세워진 후 현재까지 쓰러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그 돌탑들은 어떻게 100여 년이 넘도록 쓰러지지 않을 걸까 오늘은 마이산과 돌탑에 관한 정보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마이산이 생겨난 이유 독특한 모양의 마이산. 사실 마이산은 탄생부터가.. 2022. 9. 22.
힘들게 고향으로 돌왔지만 환영받지 못한 여인들 _ 환향녀 청나라에 붙잡혀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 그녀들은 타국에서 어떤 생각으로 버티며 살았을까.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들은 행복할 수 없었다. 오늘은 그녀들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포로로 끌려간 여성들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조선이 수많은 굴욕을 겪게 된 병자호란. 당시 도성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길 여기저기 시체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그 시체들 사이로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끔찍한 일은 이뿐만 아니었다. 조선의 임금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서 3번 절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항복을 행했다. 청나라는 항복의 대가로 수많은 남녀 조선인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조선의 인구 1000만 명중 60만 명이 포로였는데 그중 50만 명이 여자였다. 청나라 군인들.. 2022. 9. 15.
조선이 유교를 내세워 불교에게 한 짓들 한반도 역사에서 큰 영향력을 차지했던 불교.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국교로 지정되어 상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실상 지배계층에 속할 만큼 대단한 권세를 누렸던 승려들이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존재로 몰락한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되었는지, 오늘은 불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불교계의 몰락 종교인 그 이상의 지위를 가졌던 불교는 고려 초기부터 불교의 폐단이 문제가 되었지만 ( * 폐단 :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 고려 말이 되어서는 권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폐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지배층과 연관되어 엄청난 권세를 누리게 된 승려들은 광활한 토지를 소유하고 노비들을 거느리며 굉장히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 2022. 9. 13.
황금도시의 전설 '엘도라도' 가 실존했다는 증거 금은 인류 역사에서 화폐나, 귀금속으로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어 왔고 금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도 많이 치렀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역시 금을 찾기 위해 탐험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미국 서부개척의 역사도 1840년대 캘리포니아주에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였으니, 인류 역사는 '금을 차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 때문에 금은 인류 역사의 수많은 미스터리 중 빠지지 않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중 금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마스터리가 있다면 '엘도라도의 전설'을 꼽을 수 있다. 온 도시가 금으로 뒤덮여 있는 황금도시 '엘도라도' 엘도라도는 잉카의 전설 중 사람들이 가장 관심 가지는 이야기였고,.. 2022. 9. 8.
[한국사요약 14편] 조선의 마지막과 일제강점기의 시작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근대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었다. 그들의 노력처럼 민중들에게 국가 주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의회를 설립하였다면 한 나라의 이권도 쉽게 빼앗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종과 기존의 기득권층은 이를 거부하였고 본인들의 정권을 위해 전근대적 전제주의를 선택한다. (전제주의 :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지배자가 법이나 제도의 구속을 받지 않고 통치하는 것) 이는 대한제국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고중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결정권이 한 사람에게 있을 때 위기상황에 놓인 국가는 어떠한 결과를 겪게 되는지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일어난 조선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조선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한 일본의 계략 한반도에는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 2022. 9. 5.
[학국사요약 13편] 어쩌면 조선의 마지막 기회였던 '만민공동회' 오랜 시간 주변 나라에 끌려다니던 조선. 드디어 백성들이 힘을 합쳐 자주적인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하지만 이 기회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는데..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개혁을 위한 모든 정변과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외세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으며 엉망진창이 된 조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과거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서재필'은 미국에서 돌아와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서재필은 '조선을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무지함(아는 것이 없음)을 깨우쳐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민중 계몽 운동을 위해 독립신문을 발간하였으며 조선의 자주독립과 부패정치 척결, 내정개혁 민중의 참정권과 민권 운동을 위해 1896년 7월 최초 근대적인 사회단체인 '독립.. 2022. 9. 4.
[한국사요약 12편] 러시아로 도망간 고종의 '아관파천' 1894년 갑오년. 참다못해 터진 민중들의 분노 "동학농민운동" 1895년 을미년. 민비가 잔혹하게 죽게 된 "을미사변" 참으로 다사다난한 날들이 이어졌다.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난 후 단발령이 실시되었고 (*단발령 : 백성들에게 머리를 깎게 한 명령) 일본을 몰아내자는 의병활동들이 발생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 아내를 잃고 홀로남은 '고종'의 이야기이다. 러시아로 떠난 조선의 왕 '고종' 아내가 시해당하는 사건의 배후자가 본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라고 확신한 고종. 오해의 앙금으로 흥선대원군이 죽은 뒤 빈소에 찾아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잃게 되고 쓸쓸하게 혼자 남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고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집권한 지 32년 동안 아내 치.. 2022. 9. 3.
[한국사요약 11편] 명성황후의 마지막 '을미사변' 조선의 왕비 명성황후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일본의 요동반도 반납 1894년 조선의 공식 요청으로 동학농민군들을 제압하기 위해 철수해 있던 청.일 두 나라가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발발한 '청일전쟁(1894년)'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하게 된다. 승리의 대가로 청나라는 일본에게 요동반도와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이다. 야망 높은 일본의 입장에선 드디어 대륙 진출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지켜보던 나라가 있었으니 '러시아'였다. 당시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선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는 항구 즉, 요동반도가 꼭 필요했다. 일본이 이곳 .. 2022. 9. 1.
[한국사요약 10편] 명성황후의 만행에 분노한 백성들이 일으킨 '동학농민운동'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로써, '화려한 외교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조선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이끈 위대한 철의 여인' 이라며 추대해왔고, 특히 그녀의 마지막은 일본군의 시해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렇듯 꽤 긍정적인 평가를 받던 인물이지만, 근래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명성황후의 만행들 - '민 씨 세력'의 부정부패 1884년 발생한 갑신정변 이후 10년 동안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 시간 동안 조선은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원흉은 민비(명성황후), 민 씨 세력이었다. 민비와 고종은 청나라에게 빌붙는 '친청 정책'을 펼치며 온갖 부정부패를 악랄하게 즐겼다. 흥선대원군이 척결한 '세도정치'를 다시 부활.. 2022. 8. 31.
[한국사요약 9편] 3일 천하 '갑신정변' '민 씨 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은 후 다시 조선에 개화기가 시작되지만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로 나뉘게 된다.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 결국 급진 개화파는 정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번 글에서는 이들이 일으킨 정변 '갑신정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 청나라의 도움으로 '임오군란'을 해결한 민 씨. 완전한 권력을 갖게 된 그녀는 '성리학 정신은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만을 받아들이자'는 청나라식 근대화인 '양무운동'을 롤모델로 삼아 조선의 개화를 준비했다.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필요로 했지만 민 씨는 양반들이 세금을 내는 걸 반대했기 때문에 그 피해는 오로지 백성들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한편, 임오군란 이후 개화파들은 어떤 방식의 개화 정책을 추진해야.. 2022. 8. 30.
[한국사요약 8편] '강화도 조약' 이후 시작된 조선의 개화기와 '임오군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주변국들에 비해 조선은 근대화 발전을 하지 못하였고 쇠퇴했다. 이후 아들인 고종과 아내 민비가 권력을 잡아 정치를 하게 되는데 '민비'는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강화도조약' 체결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워낙 막강했던 탓에 20살이 넘어도 집권을 할 수 없었던 조선 제26대 왕 고종. 그는 아내의 집안 '민씨세력'과 함께 아버지를 견제를 하게 된다.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하는 '최익현의 상소문'을 계기로 고종과 그의 아내 '민 씨'는 1873년 흥선대원군을 정치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2년 후인 1875년 일본의 군함 '운요호'가.. 2022. 8. 29.
[한국사요약 7편]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로 흥하고, '쇄국정치'로 망한 조선 지난 [한국사요약 6편]에서는 '안동김씨' 가문에 의한 '세도정치'를 다루었다. 세도정치란, 신하들이 왕보다 높은 권력을 잡고 대신 정치하는 것을 뜻하며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가문의 세력이 강해지는 '정치구조'때문에 '세도가문'간의 세력싸움이 잦았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더욱 고단해졌다. 이러한 배경으로 세도가문은 허수아비 같은 왕이 될 인물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그렇게 즉위한 왕 '고종' 그리고 그의 아버지'흥선대원군'이 등장하게 된다. 7편에서는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와'쇄국 정치'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로 인한 '세도정치'의 몰락 *고종 (제26대 왕 / 재위 1863 ~ 1907) '세도정치가문'에 의해 왕이 된 '고종'과 대원군이 된 그의 아버지. 본래 '대원군.. 2022. 8. 28.
[한국사요약 6편] 조선을 병들게 한 세도정치(순조 ~ 고종) 한국사요약 6편에서는 조선 1800년 ~ 1868년 역대 임금 [순조-현종-철종-고종] 순으로 조선역사를 주요사건들로 간추려 이야기 하려고 한다. #순조(제 23대 왕 재위 1800~1834)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어린 아들 '순조'가 조선의 23대 임금에 오르게 된다. 11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그의 할머니 '정순왕후'가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는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왕의 모든 권한과 권위를 갖게 된 정순왕후는 정조의 반대파였던 인물이고 정조가 수립한 정치질서를 모두 갈아엎게 되는데 '정조'의 지지세력들을 탄압하고 복수하기 위해 수많은 천주교도들을 숙청한다. 이 사건을 '신유박해(1801년)이라 한다. 하지만 4년 후 할머니'정순왕후'가 물러났지만 아직까지도 어렸던 15살의 순조... 2022. 8. 26.
[한국사요약 5편] 정신병에 걸린 사도세자 (경종 ~ 정조) 한국사요약 5편에서는 조선 1724년 ~ 1800년 역대 임금 [경종 - 영조 - 정조] 순으로 이야기하되, 비운의 세자로 '사도세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경종 (조선 제20대 왕 재위 1720~1724) 재위 4년 되던 해 어느 날 몸이 허약했던 경종은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게장과 생감을 먹고 배탈이 나 의식을 잃고 사망하게 된다. 까칠한 남자 _ 영조 그렇게 왕위에 오르게 된 연잉군이었던 "영조(조선 제21대 왕 재위 1724~1776)" 즉위하자마자 영조는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 게장과 생감을 준 게 바로 연잉군, 즉 영조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몸종('동이') 출신이었기에 미천한 출신과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콤플렉스로 항상 깐깐하고 예민했던 왕으로 전해진다. .. 2022. 8. 25.
[한국사요약 4편] 조선역사 최악의 굴욕 _ 삼배구고두례 '인조'의 수모 _ 삼배구고두례 광해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 이때 후금에선 사이좋았던 광해를 몰아냈다는 명분으로 조선에 쳐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1627년)" 왕과 귀족들은 재빨리 강화도로 도망가고, 조선의 관군과 의병들이 평안도에서 후금과 맞서 싸웠다. 이때 후금은 명나라와 전쟁 중이었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조선이 좀 부담스러워 제안을 하게 된다. "우리를 형님의 나라로 부르겠다 약속한다면 전쟁을 멈추겠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였고 정묘호란은 끝나게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후금은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명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후금의 우두머리, '칸 홍타이지'는 자신을 황제로 높이고 국호를 청으로 바꾼다. 또한, 겸.. 2022. 8. 24.
[한국사요약 3편] 조선왕조 세조 - 광해 #수양대군 _세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역모를 일으켜 왕위에 오른 '세조' 한편으로는 '저주받은 왕' 이라고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야사에 따르면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며칠 뒤 세조는 꿈을 꾸게 되는데 죽은 '현덕왕후(단종 엄마)'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을 했다. "네가 감히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이다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세조는 본인의 첫째 아들인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한다. 또한 침을 맞은 얼굴에 피부병이 생기는 기괴한 일까지 겪게 된다. 실제로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하다가 피부가 썩어 생을 마감한다. #예종-성종 첫째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둘째 아들인 예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제위 1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으로 조선을 ..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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