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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학국사요약 13편] 어쩌면 조선의 마지막 기회였던 '만민공동회'

by 파베누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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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주변 나라에 끌려다니던 조선.

드디어 백성들이 힘을 합쳐 자주적인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하지만 이 기회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는데..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서재필과 독립협회 회원들

개혁을 위한 모든 정변과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외세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으며 엉망진창이 된 조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과거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서재필'은

미국에서 돌아와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서재필은 '조선을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무지함(아는 것이 없음)을 깨우쳐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민중 계몽 운동을 위해 독립신문을 발간하였으며

조선의 자주독립과 부패정치 척결, 내정개혁

민중의 참정권과 민권 운동을 위해 

1896년 7월 최초 근대적인 사회단체인

'독립협회'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 독립협회의 반복된 요구로

1년 만인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조선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다(1897년)

이에 고종은 '고종황제'가 되고 

민비 (중전 민 씨)가 사후(죽은 뒤) '명성황후'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이렇게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새로운 대한제국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백성의 목소리 '만민공동회'

러시아가 친러파들을 이용하여 내정을 간섭하고

이권 침탈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석탄창고 설치를 목적으로 부산의 

절영도 지역을 빌려달라고 한다. 

(러시아의 침략정책인 '절영도 조차')

고종은 이를 허락하였는데, 독립협회는 이에 반발한다.

독립협회는 백성들 누구나 본인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만밍공동회'를 개최하여 강하게 비판하며 저항하였고

결국 러시아는 절영도 조차 요구를 철회하게 된다.

이뿐 아니라 러시아 군사 교련단과 재정 고문 철수, 

한. 러 은행 폐쇄 등

언제나 정부는 외세가 요구하면

아무 말 못 하고 다 해주었지만,

놀랍게도 이번만큼은 백성들의 의해 막아내게 된다. 

민중들의 힘을 느낀 고종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적극적으로 호응해 준다.

덕분에 힘을 얻은 민중들은

만민공동회에서 관료들까지 참여하는

'관민공동회'를 개최하게 된다.

1898년 10월 29일 종로에서 최대 규모의 집회로 열린

관민공동회. (관료와 민중이 힘을 합침)

정부 대신들을 포함해 지식인, 학생, 상인, 종교인, 기생, 백정 등

신분과는 상관없이 대규모로 모이게 된다.

그리고 연설은 '백정 박성춘'이 하게 되었다.

'백정' 직업을 가진 자가 연설을 한 것은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상황이었는데

이것은 신분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목소리를 내며

근대적 민주주의의 싹이 트고 있음을 의미했고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었다. 

이 날 회의에서 6개 조의 개혁안을 결의하게 되었고

헌의 6조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민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전제 황권을 견고하게 할 것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서명하고 시행할 것
3. 국가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표할 것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정부에 그 뜻을 물어서 중의에 따를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여기에 더해 오늘날 의회와 같은 '중추원 관제'를 건립한다.

이렇게 이리저리 치이던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들어와

근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실패

고종도 동의한 개혁안과 의회 설치였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기존의 기득권층(양반)이 문제였다.

의회를 설립하면 그동안의 권력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립협회의 힘은 매우 강해지고 있었고

'수구파'(변화를 싫어하고 기존의 것을 고수하려는 집단) 에게

헌의 6조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개혁적인 정강들이었다.

수구파

진보적인 것을 외면하고 옛 제도나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따르려는 보수적인 무리

 

때문에  독립협회를 모함하게 되는데,

'독립협회가 입금이 존재하지 않는 공화정을 하려 한다'거나

'고종황제를 폐위시키고 대통령을 세우려고 한다' 등의

익명서가 거리를 나돌았고

이에 놀란 고종은 협회라고 이름한 것은 모두 없애버리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결국 개혁파 정부는 붕괴되고

예전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을 제공했던 탐관오리 '조병갑'과 사촌지간이자

더 지독하게 부패한 탐관오리 '조병식'을 내각으로 친러 '수구파' 정부가 조직된다.

이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렸지만

군대까지 동원해 만민공동회를 강제 해산시키게 되고

독립협회 또한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던 만민공동회 운동은

실패로 끝이 나게 된다.

위로부터 개혁인 '갑신정변'

아래로부터 개혁인 '동학농민운동'

위와 아래 모두가 함께하는 개혁인 '만민공동회 운동'

아쉽게도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당시 상황에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14편 [조선의 멸망] 이야기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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