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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한국사요약 12편] 러시아로 도망간 고종의 '아관파천'

by 파베누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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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갑오년. 참다못해 터진 민중들의 분노

"동학농민운동"

1895년 을미년. 민비가 잔혹하게 죽게 된

"을미사변"

참으로 다사다난한 날들이 이어졌다.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난 후 단발령이 실시되었고

(*단발령 : 백성들에게 머리를 깎게 한 명령)

일본을 몰아내자는 의병활동들이 발생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 

아내를 잃고 홀로남은 '고종'의 이야기이다.

 

 

 

러시아로 떠난 조선의 왕 '고종'

현존하는 러시아 공사관의 모습

아내가 시해당하는 사건의 배후자가

본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라고 확신한 고종.

오해의 앙금으로 흥선대원군이 죽은 뒤

빈소에 찾아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잃게 되고

쓸쓸하게 혼자 남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고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집권한 지 32년 동안 아내 치마폭에 휩싸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고종은

이제야 홀로 정치를 하게 되었다.

혼돈의 상황인 조선의 왕으로 그가 처음으로 한 정치적 결단은

'궁을 버리고 러시아로 피신하는 것'

즉, '아관파천'이다.

아관파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

왕이 궁을 버리고 피신하는 일이 있다니..

고종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아내가 일본 낭인들의 의해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게 되고

본인 또한 암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도피를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커피를 한 사발씩 마시는 걸 즐기는 고종은 어느 날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 맛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바로 뱉어버리게 된다.

누군가 커피에 독을 탄 것이다.

그의 아들 '순종'은 그 커피를 다 마시고 난 후

이가 다 빠지고 혈변을 누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보면 고중의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한 아관파천은 아내의 정책인 '이이제이' 

'외세를 끌어들여 외세를 견제한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일본의 세력이 잠시나마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래 왔듯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외세를 끌어들인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했다. 

 

 

 

아관파천의 부작용

이 시기 열강(여러 나라들)의 이권 침탈이 절정에 치닫게 된다. 

러시아가 호의로 도와준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러시아는 삼림 체벌권을 요구했다.

그리고 조선이 열강과 맺었던 '최혜국 대우" 조항으로

(어느 나라가 좋은 혜택을 받으면 다른 나라들도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조항)

미국 역시 금광 체벌권을 요구했다. 

일본은 철도부설권을 요구했다.

최혜국대우

통상. 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어느 외국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당 조약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러한 대우를 받는 나라를 최혜국이라 하며,
조약에 들어 있는 그러한 조항을 최혜국 조항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아관파천으로 일본의 힘이 일시적으로는 

주춤하긴 했지만, 조선의 자주성과 국력은 곤두박질치면서

열강의 경제적 침략이 심화되었다.

당연히 국가의 재정은 손 쓸 수 없게 되고

이미 바닥나 있던 국운은 끝이 보일 정도였다. 

원래도 힘들었던 조선의 백성들은

어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를 만큼

가혹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시민단체인 '독립협회'가 등장한다.

그동안 외세에 힘을 빌려서 당한 치욕들을 겪고도

지속적으로 외세에 의존하는 자세를 비난했다. 

때문에 고종의 환궁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친러파의 반대에 실패했으나

여론이 나빠지자 1년 여만에 고종이 조선으로 돌아온다. 

고종은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그리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13편 [최초 민주주의] 이야기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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