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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황금도시의 전설 '엘도라도' 가 실존했다는 증거

by 파베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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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인류 역사에서 화폐나, 귀금속으로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어 왔고

금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도 많이 치렀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역시

금을 찾기 위해 탐험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미국 서부개척의 역사도 1840년대 캘리포니아주에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였으니,

인류 역사는 '금을 차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 때문에 금은 인류 역사의 수많은 미스터리 중

빠지지 않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중 금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마스터리가 있다면

'엘도라도의 전설'을 꼽을 수 있다.

온 도시가 금으로 뒤덮여 있는 황금도시

'엘도라도'

엘도라도는 잉카의 전설 중 

사람들이 가장 관심 가지는 이야기였고,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인데

엘도라도는 정말로 실존했던 도시였을까?

오늘은 엘도라도의 소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엘도라도의 전설 

새로운 바닷길이 열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미지의 나라를 찾아 나서던 대항해 시대.

중앙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토박이 원주민으로부터

신비로운 황금도시의 전설을 듣게 된다.

'안데스 산맥 너머

황금을 온몸에 바른 사람들과 황금도시가 있다'

는 내용으로

이 전설의 시작은 '무이스카족'의 풍습 때문이었다.

무이스카족은 새 부족장이 즉위하면

온몸에 금가루를 바른 후 

신성한 호수 '과타비타'의 한가운데로 가는데,

이때 뗏목에는 황금과 보석을 실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수의 신에게 기도한 후에

배에 실은 보물과 황금을 호수에 던지고 추장은

호수의 물로 온몸을 씻어내는 풍습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전설을 접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황금도시를 '엘도라도'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전설은 삽시간에 퍼져 유럽 전역을 뒤흔든다.

그리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전설 속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1536년 스페인의 행정관

'곤잘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가

500명의 군인과 85마리의 말을 이끌고

남아메리카를 탐색하며 엘도라도를 찾아 나서게 되고,

콜롬비아에서 무이스카족을 만나게 된다.

곤잘로는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학살해

'엘도라도'의 위치를 물었고

고문을 견디다 못한 원주민들은

과거 신비의 의식을 치르던 호수

'과타비타'의 위치를 알려주게 된다.

곤잘로는 그곳이 바로 엘도라도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호수를 찾아가는데

호수의 크기가 너무 넓고 깊어

많은 병사들을 동원한다고 해도

당시의 기술로는 호수 깊은 곳에 가라앉은 보물을

찾기 어려웠다.

때문에 곤잘로는 어쩌면 황금이 가득한 호수를

눈앞에 둔 채 돌아서야 했다.

 

 

호수 아래의 황금도시?

곤잘로가 과타비타 호수를 발견한 이후

전설로 여겨졌던 엘도라도가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페인 정복자들의 욕망은 더 커져버렸다.

그 스페인 정복자들은 전설이 시작된

과타비타 호수 인근은 물론이고

무이스카족의 영역에 있던  호수들을 탐색했고

결국 금으로 만든 공예품이나

장신구들을 찾게 되었지만, 발견된 금들은

알려진 전설에 비해 너무 적었고, 

진짜 보물은 과타비타 호수 안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던 1580년 스페인 정복자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가  황금 찾기에 뛰어든다.

세풀베다는 수천 명의 노예를 동원하여 

과타비타 호수에 배수로를 만들어 물을 빼버렸고,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황금 장신구들과 에메랄드 등

보석들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로가 얼마 못 가 무너져 내리고

많은 노예들이 목숨을 읽으면서 황금 찾기에 실패한다.

그 이후로도 사람들은

호수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시도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호수의 물을 빼낼 방법이 없어 보물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엘도라도를 찾던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가 생겼다.

때문에 엘도라도의 전설은

'정복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원주민들의 거짓말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진실은 과타비타 호수 아래 남아있게 된다. 

그런데 1910년대 영국 엔지니어  '하틀리 놀스'가

호수의 수심을 낮추는 데 성공하고

금, 에메랄드, 호박(보석) 등을 발견했는데

그는 그 후에 인터뷰에서 

약 2만 달러 가치 이상의 보물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수 바닥이 햇볕에 노출되면서

진흙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고

깊은 탐사는 어려워졌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꺼낸 것의 대부분은 호수 주변에서 꺼낸 것이다.
우리는 아직 바다까지 파헤치지 못했고
얼마나 더 파헤쳐야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호수 바닥이 가장 풍부한 보물이 있는 엘도라도일 수도 있다"

                                             영국 엔지니어 '히틀리 놀스'

 

하지만 그의 주장에도 호수 밑바닥에 있을 

엘도라도의 진실은 끝내 밝힐 수 없게 되었다

1965년 콜롬비아 정부가

과타비타 호수를 자연공원으로 지정하면서

호수에서의 모든 채굴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16세기 이후 400년 가까이 계속된

'황금도시' 찾기는 막을 내리는 듯했지만

1969년, 뜻밖의 일이 생긴다. 

 

 

 

황금빛 인간 '엘 도라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남쪽,

농부 3명이 잃어버린 개를 찾아 헤매다가

험준한 바위 밑에 만들어진 작은 동굴을 발견하는데

이곳에서 황금 공예품을 발굴한다.

이 공예품은 약 20cm 길이에

순도 80% 정도의 금으로 만들어졌는데

조사 결과 무이스카족 문화 후기에 해당하는

1200년~15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뗏목 가운데 머리장식과 귀걸이, 코걸이를 착용한 인물이

여러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

무이스카족의 새 족장 즉위식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뗏목 가운데 머리장식과 귀걸이, 코걸이를 착용한 인물이 여러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 무이스카족의 새 족장 즉위식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 공예품을 자세히 보면, 익숙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뗏목 가운데 머리장식과 귀걸이, 코걸이를 착용한 인물이

여러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

이것은 무이스카족의 새 족장 즉위식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공예품이 등장한 이후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엘도라도는 황금도시가 아닌,

금장 모형 자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El dorado'라는 뜻이 '황금도시'라는 뜻 이외에도

스페인어로 정관사 El , 

'황금으로 된' Dorado라고 해석될 수 있어

'황금으로 된 사람'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일각에서는

'엘도라도 전설은 부풀려진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항해 시대가 끝난 후

실제로 남아메리카 곳곳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일부 학자들은 엘도라도는 실제로 존재했고

대항해 시대 안에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의 증언으로

탐험이 시작된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

황금의 전설에 눈먼 정복자들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인간의 탐욕스러운 민낯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진실은 베일에 가려있지만

과타비타 호수와 그 인근에서 금으로 된 유물이 발굴되어

콜롬비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남아메리카에서 채굴되어 유럽으로 수송된 황금은

당시 유럽인들이 사용하던 모든 황금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고 하니

엘도라도가 실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과연,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금을 어디서 발굴했을까?

아직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엘도라도를 이야기했던 원주민의 증언은,

정말로 탐욕에 눈이 먼 정복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복수는 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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