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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한국사요약 3편] 조선왕조 세조 - 광해

by 파베누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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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_세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역모를 일으켜

왕위에 오른 '세조'

한편으로는 '저주받은 왕' 이라고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야사에 따르면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며칠 뒤

세조는 꿈을 꾸게 되는데

죽은 '현덕왕후(단종 엄마)'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을 했다.

 

"네가 감히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이다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세조는

본인의 첫째 아들인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한다.

또한 침을 맞은 얼굴에 피부병이 생기는

기괴한 일까지 겪게 된다. 

실제로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하다가

피부가 썩어 생을 마감한다. 

 

 

#예종-성종

 

첫째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둘째 아들인 예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제위 1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으로 조선을 완성시킨 성군이던

조선 제 9대왕 '성종'

12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했지만

25년 동안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조선 건국 이래로 실행해오던 많은 정책들을

완결함으로써 나라는 안정적으로 잘 흘러갔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으니..

그의 아들 '연산군'이 등장한다.

 

#연산군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유명한 왕

먼저, 패륜을 많이 저질렀다.

연산군은 본인의 '계모'들이었던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를 잡아 고문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자식들, 즉 연산군의 이복동생들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불러

정씨와 엄씨를 매질하라 명령했다. 

이는 자식에 의해 부모들이 살해당하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산군은 여색에 미쳐있었다.

 

연산군은 재홍사를 파견해 팔도의 미녀를 강제로 징발했고
그 수가 1만이 넘었다 하니, 그로 인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조선왕조실록 1505년 -

 

 

전국의 미녀들을 구해오라 명하는데,

가장 예쁘고 노래를 잘하는 이들을 뽑아

'흥청'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것이 오늘날 '흥청망청'의 어원이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왕의 음탕이 날로 심하여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비밀리에 누구의 아내인지 알아뒀다가 
이어 궁중에 묵게 하여 밤에 강제로 간음하며 낮에도 그리 하였다"

 

라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마음에만 들면 신하의 부인도

간음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조선실록에는  연산군에게 아내를 바친 

신하의 명단이 기록되어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쉰 살이 넘은 큰어머니를 간음했다고 까지 전해진다. 

 

"왕이 박 씨(큰어머니)에게 특별히 명하여 세자를 입시하게 하고,
드디어 간통을 한 다음 은으로 승평 부대부인이랑 도서를 만들어 주었다."

- 연산군일기 -

 

 

그리하여 조선역사 최초로 

신하들이 왕을 내쫓는 반정을 일으키게 된다.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전성대군이 중종으로 옹립되고,
연산군과 함께 채홍사도 사라졌다.
그리고 반정의 공신들은 새로운 간신으로 등극했다. 

-조선왕조실록 1506년 음력 9월 2일 -

 

이것이 '중종반정'이다. 

 

 

#중종

 

연산군이 폐위되고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이 즉위한다. 

하지만 허수아비 왕으로 지지기반이 너무 약했다. 

이 때문에 왕권강화를 위해 똑똑하고 올곧은 

성리학 파  '조광조'를 데려온다.

그렇게 중종은 무척이나 아끼는 조광조와 함께

개혁정책을 실시하는데 물론 실패한다. 

이로 인해

외척(부인 집안)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진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고 '인종', '명종'이 차례로 즉위한다.

외척세력들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

드라마 '여인천하'로 유명하다. 

 

이때 당시 백성들의 삶은 벼랑 끝이었다. 

심지어 조정에선 백성들이 먹고 살 게 없으니

나무뿌리 먹는 법을 책으로 내주기까지 하는데

답이 없는 시기였다. 

때문에 의적 '임꺽정'은 명종 때 활동했고

실존했다고 전해진다. 

 

 

#선조

 

그리고 무능의 아이콘이자 열폭남 

제14대 왕 '선조'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겁을 잔뜩 먹은 선조는

재빨리 북쪽인 의주로 도망을 가는데

여차하면 나라를 버리고

동맹국이였던 명나라로 망명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백성들은 화가 잔뜩 났고

경복궁을 불태우고 난리였다. 

이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선조는 왕이 될 수 없었던 서자

'광해군'을 세자 책봉을 하게 되는데

사실은 총일 받이 삼아 이루어진 책봉이었다. 

하지만 영민했던 광해는  전국을 돌면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민심을 안정시킨다.

온전히 왕 역할을 해냈던 건 광해나 다름없었다. 

임진왜란 승리의 배경은 광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일본군과 23번 싸워 모두 이긴 

위대한 '이순신 장군'도 있다. 

 

 

#광해

 

임진왜란이 끝나고 백성들은 당연히

선조보다는 광해를 좋아했고 선조는 이를 질투하여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광해는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광해는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을 재정비한다. 

이때 당시

중국에선 떠오르는 대세 '후금'이 명나라를 침략했다. 

명나라는 조선에게 명분과 의리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에 광해는 명나라와 금나라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

'중립외교'를 펼친다. 

(영화 '광해' 참고 _픽션인 설정들은 있지만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펼치려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 '광해'

 

 

그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따졌던 실용주의자였다

또한 광해는 가난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부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경제, 문화, 외교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다. 

하지만 명나라를 지지하던 사대주의 대신들은

광해군의 정책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고

결국, 광해는 그들에 의해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게 되고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 이후 왕위에 오른 제16대 왕 '인조'

좋았던 것도 잠시,

인조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굴욕을 겪게 되는데...

 

 

4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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