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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한국사요약 5편] 정신병에 걸린 사도세자 (경종 ~ 정조)

by 파베누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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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요약 5편에서는 조선 1724년 ~ 1800년 역대 임금 [경종 - 영조 - 정조] 순으로 

이야기하되, 비운의 세자로  '사도세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경종 (조선 제20대 왕 재위 1720~1724)

재위 4년 되던 해 어느 날

몸이 허약했던 경종은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게장과 생감을 먹고 배탈이 나

의식을 잃고 사망하게 된다.

 

 

까칠한 남자 _ 영조

그렇게 왕위에 오르게 된 연잉군이었던

"영조(조선 제21대 왕 재위 1724~1776)"

 

즉위하자마자 영조는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 게장과 생감을 준 게 바로

연잉군, 즉 영조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몸종('동이') 출신이었기에 

미천한 출신과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콤플렉스로

항상 깐깐하고 예민했던 왕으로 전해진다.

(이전 포스팅 '정성왕후' 글과 연관된다) 

즉위 과정에서 겪은 극심한 당쟁의 폐해를 느낀 영조는

당파 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모든 당이 싸우지 않고 골고루 참여할 수 있는

'탕평책'을 실시한다.

또한, 18세부터 28세까지 궁궐 밖에서

백성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경험으로

백성들과 수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서민 군주의 영조라고도 불리게 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늘 공부하며

사회 산업 문화 예술 등

각 방면에 걸쳐 많은 발전을 이루어 낸다.

 

 

#사도세자

그리고 태어난 그의 아들 '사도세자'

영조는 아들 '효장세자'가 있었지만

그는 10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마흔두 살에 늦둥이로 낳은 자식이 바로

'이선' 즉, '사도세자'이다.

태어나자마자 세자 책봉을 할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릴 때 공부도 잘하고 아빠(영조) 말씀도 잘 들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자라나면서 영조의 기대와는 달리

공부보다는 무술에 빠지게 된다.

영조는 학문을 중요시하는 군주였기에

아들과의 갈등이 시작하게 된다.

 

또한, 시간이 지나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게 되는데,

그 4년의 기간 동안 부자간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진다.

본인 기대에 차지 않았던 영조는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고 비난을 했고,

결국 세도세자는 아버지만 보면 두려움에 떨게 되고,

'한중록'에는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의대증'에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증세가 정신분열증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렇게 미치게 된 사도세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칼을 휘두르고

영조의 여자를 건드려 임신도 시키고

겁탈도 하면서 만행을 저지른다.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들이 100여 명에 달한다고 전해지는데

그렇게 영조와 사도세자는 대화 단절로 이어지게 된다.

1762년.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한 영조는

사도세자를 부르게 되고,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 뒤 주검으로 나오게 된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바라보는 영조

 

 

 

#이산 _ 정조

11살 나이에 이 모든 것을 지켜봤던 어린아이

'이산'

역적의 아들은 왕세손이 될 수 없었기에,

영조는 호적을 '사도세자'가 아닌

'효장세자'의 후사로 삼아 왕통을 잇게 했다.

당시 영조의 세력인 '노론'은 왕세손 '이산'을 경계했다.

사도세자를 죽인 배후가 바로

노론이었다는 소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론은 '이산'이 왕이 되면

본인들에게 복수할 거란 생각에 끊임없이 방해를 했지만

1776년 3월

영조가 83세 나이로 승하하게 되고

이산은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로 즉위한다.

"정조 (조선 제22대 왕  재위 1776~1800)"

 

그는 취임식 날 유명한 대사를 한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은

노론 세력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미이다.

위기감을 느낀 노론은 이 정조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데,

정조가 머물고 있는 경희궁 존현각 지붕까지 올라갔지만

다행히 정조의 호위무사에 의해 발각되고

정조 암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후에 정조는 강력한 왕권 강화를 위해

'장용영'을 만들어 군권을 장악하고

'규장각'을 만들어 교육 및 연구를 했다.

 

대표적 인물은

'정약용'

또한 자신의 이상적인 도시 수원 화성을 건설했다.

이보다 무수히 많은 업적을 이루어낸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세운 정조.

말년에 본인의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

본인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와 같이

화성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했다고 하는데,

1800년. 등에 난 종기가 온몸에 퍼진 정조는

사망하게 되고 실현되지 못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미래는

기대해 볼 만했으나 차례로 즉위한

순조-헌종-철종이

왕 노릇을 전혀 못하게 되고

60년 이상 동안 세도 정치에 의한 암흑기가 시작된다.

 

 

6편 [세도정치] 이야기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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