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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대한민국의 자부심 '거북선'의 진실

by 파베누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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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 대사를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한 사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1592년부터 약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며
세계 해전사에 독보적인 기록을 남긴
장군이기도 한데,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떠올릴 때면
떼놓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거북선

출처 주간일보 > 그래픽디자이너 한호림씨가 7년간 작업 끝에 복원한 거북선 모습



배 앞머리에 달린 용머리
철갑으로 둘러싸인 천장
선체 양옆에 달린 포,


과거 사용했던 5원짜리 동전이나
500원짜리 지폐에도
거북선 그림이 들어 있었다 하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북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신무기로 등장해
왜군에겐 공포심을,
조선인에겐 자긍심을 준
거북선인데

왜 거북선의 진짜 모습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는 걸까

먼저 역사의 기록부터 살펴보자

 

 

거북선의 역사적 기록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거북선에 대한 내용이
네 차례 기록되어 있다.

1592년 2월 8일,
이 날 거북선의 돛으로 쓸 배 29 필을 받았다.

1592년 3월 27일,
거북선에서 대표를 쏘는 것을 시험했다.

1592년 4월 11일,
이제야 배로 거북선의 돛을 만들었다.

1592년 4월 12일,
거북선에서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쏘았다.



임진왜란이 4월 13일 발발했으니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
거북 전을 완성했다는 것인데
정말 운명 같은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인
약 180년 전,
태종 때 처음 등장했다.

"임금이 임진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1413년(태종 13년)
<태종실록>에 기록된 내용


그 후 2년 뒤인 1415년에는

"거북선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의 좋은 계책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전승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라 기록되어 있었다.

이렇게 역사의 기록에는
거북선이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거북선의 설계도는 어느 곳에도
남아있질 않아
임진왜란의 거북선과
태종실록의 거북선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그리고 그때의 모습은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180년 동안 거북선과 같은 배가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전의 기록을 참고해
거북선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거북선은 고종 때까지도
남아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거북선은 모두 사라졌고
외관과 구조에 대한 도면은
전무한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 복원된 거북선은
<조선왕조실록>
<충무공 전서> 등
옛 문헌을 기초로 하여
재현한 것으로
100% 실제 모습은 아니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


세계 최초의 철갑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철갑선이라는 주장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과 서양에서 나왔다.

이순신 장군에게 패한
일본 장수 도노오카의 회고록
'고려선전기'에 따르면

"큰 배 중 3척이 거북선으로
쇠로 되어 있는 요새였다"


고 주장하였고

미국인 선교사 겸 동양학자였던
월리엄 그리피스는
1882년 자신의 저서에서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군함을 설명하며
'금속으로 감싼 배'라고 언급.

1929년
영국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거북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
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이
현재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다

우리나라엔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기록이 없기 때문인데
이순신이 직접 기록한 장계
'당포파왜병장'에서는

"신이 일찍부터 섬 오랑캐의 침략을 염려해
특별히 귀선을 만들었습니다
앞에 용두를 설치해 아가리로 대포를 쏘게 했습니다
등에는 쇠꼬챙이를 꽂았으며 안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게 했습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쇠꼬챙이 언급만 있을 뿐
철갑선이라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거북선이 철갑선이
아니었으리라 추측했는데
철갑선이었다면
무게 중심이 흔들려
전복될 위험이 있고
기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역사학자이자
1908년 이순신전을 쓴
단채 신채호 선생도
조선상고사에서

"최초의 철갑선이면 자랑스럽겠지만
철갑선이 아닌 걸맞다고 할 수 없다"


라 기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주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철갑선이 아니었다면 왜군의 화공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고,

조선시대 성문처럼
나무에 얇은 쇠판을
붙이는 방식이라면
무게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거북선은 3층이었다?

거북선의 미스터리는 또 하나 있다.

바로 , 내부 구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거북선은
2층 구조의 모습니다.
이 구조를 최초로 제기한 것은
선교사 출신 문화 연구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였다.

1930년대, 언더우는
선조수정실록에 남아있던
거북선의 기록을 보고 흥미를 느껴
2층 구조의 거북선 모형을 만들었고
이후 언더우드의 2층 거북선 모형이
정설로 자리 잡은 건데

그런데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언더우드는
거북선 모형을 제창할 때
서양식 수평 노에 따라 만들었는데
거북선의 노는 조선식
즉,
위에서 노를 젓는 방식이었던 것.


따라서 거북선이 2층 구조였다면
1층에 선실이 있고
2층에 전투 공간과 노를 젓는 공간이
합쳐지게 된다는 이론이 나온다.

쉽게 말해
노를 젓다가 노를 빼고는
그 구멍에 포를 설치해서
공격을 한다는 것인데,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뿐 아니라
사격하면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전투력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 날 것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언더우드의
2층 설을 반박하면서
3층 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2004년
결정적인 단서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 미국 뉴욕에서 공개된
고서화였다.


가로 176m , 세로 240cm 크기의
대형 비단 천에 드려진 이 그림에는
3층 높이의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는데

무기를 점검하는 병사들과
보급품을 나르는 민간인들.
실제 해전에서 있을법한 풍경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또, 기록에 따르면

"사면을 판옥으로 꾸미고 형상은 거북 등 같으며
쇠못을 옆과 양 머리에 꽂았는데
왜선과 만나면 부딪히는 것은 다 부서지니,
수전에 쓰는 것으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라는데

이를 봤을 때 거북선은
판옥선을 개조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판옥선이 3층이었기 때문에
거북선 3층 설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 가설에도 문제는 있었다.
공개된 그림 속
무기와 의복들을 봤을 때
18세기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
3층 높이의 판옥선에 그대로
지붕을 씌었다면
무게중심이 높아서 기동력에
큰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이런 주장들 때문에
학계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진실은 결국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학자들은 오랜 논쟁을 끝내고자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는
거북선 발굴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지만
바닷속에서 거북선이 발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첨단장비의 발달로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발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아예 인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전문가는

"거북선의 하중으로는
침몰할 수 없고
근본적으로 목선인 거북선은
격파되기는 했지만
격침될 수는 없다"며

인양 가능성이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한반도를 지켰던
우리 민족의 자긍심으로 여겨지지만
설계도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아
실제 모습은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거북선.

기록에 따르면
거북선은 임진왜란 중 3척,

1808년까지 약 30척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북선은 역사적 상징성을 떠나서도
군사적, 사료적 가치가 엄청나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물론 거북선의 실제 모습이
무엇이든 간에
현재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들만
보아도 거북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연
명량 앞바다에서 왜구를 물리쳤던
거북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랑스러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오늘도 마음 한구석이 웅장 해지며
다음에는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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