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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후편

by 파베누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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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1592)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과대망상증 환자에 몽상가였던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먼저 조선의 왕 '선조'를 잡고

편하게 명나라를 친 다음

천하를 다스리겠다. 

 

 

 

그런데 웬걸?

선조가 잽싸게 줄행랑쳐버린다.

아예 명나라로 망명까지 하려고 한다.

이러한 선조를 향한 백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와중에

다행히 왜구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간

선조를 잡지 못했고 

덕분에 전쟁은 장기화된다. 

 

그리고 

이순신의 전설이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후편

 

 

그동안 조선에서 유일하게 

전쟁준비를 철저하게 한 이순신은

왜구가 침략했단 소식을 듣고 

전투태세를 갖추게 된다. 

 

1592년 5월 4일.

첫 출전

 

왜구들은 약탈과 방화가 

특화되어있는 

못돼 먹은 아이들이었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육지에서

나쁜 짓만 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순신에게 혼쭐이 나는데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상대 26척의 배를 격침시켰다.

 

 

이게 바로 이순신의 최초의 해전이자

첫 승리였던 ' 옥포해전'

옥포해전 이후 합포와 적진포에서 

차례로 왜구를 물에 담가버린다.

 

이에도 정신 못 차린 왜구들은

다시 이순신에게 덤비게 되는데

 

사천 앞바다에서 격멸당하고

당포 앞바다에서 박살 나고

당항포에서 찢기고

율포에서 작살나고

 

그냥 이순신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업적이었는데

장기화가 된 전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물자 보급'이었다. 

 

특히 왜구 입장에선

부산에서 서울까지 보급해야 하는데

육지로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배를 이용해 옮겨야만 하는 상황이라

전라도 앞바다를 지나쳐야 했지만

이분이 떡 하니 지키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박살 나고 

보급로를 아예 끊겨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화가 단단히 난 히데요시는 

부산포에 집합시키게 된다. 

 

"이번에도 지면 너희들 다 끝장이다

이순신을 죽여라!"

 

유감스럽게도

아직 정신 못 차린 왜구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을 참 교육하기 위해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을 

준비하게 된다. 

 

한산도 앞바다는

거제도와 통영 사이에 있는 곳으로

사방으로 막혀 도망갈 길이 없던 곳이다.

 

이곳으로 왜구들을 유인하기 위해

조선의 함대 6척을 왜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보내게 된다. 

이를 발견한 어리석은 왜구들은

이때다 싶어 조선의 함대를 추격했다. 

 

재빨리 후퇴한 조선의 함대 6척은

한산도 앞바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일본 함대들을 향해 배를 

180도 돌리고 , 그곳에 대기하던

조선 함대들은 학이 날개를 펼치듯

일본 함대를 둘러싼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학익진'

 

네이버 지식사전 > 학익진도 _ 학이 날개를 펼친 형태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진법

 

 

그렇게 둘러 싸인 일본 함대들은

조선의 참교육을 받게 되는데

조선의 피해는 거의 없었고,

일본은 거의 몰살당하게 된다.

 

 

이제야 조금 정신 차림 히데요시는

이순신과의 전투를 금지하는

'해전 금지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미 늦은 판단이었다. 

 

이순신은 왜구들의 본거지가 된

부산으로 돌격했는데

부산으로 가는 도중 

5번의 습격을 받았지만

깔끔하게 참수시켜 버렸다. 

 

부산 앞바다에 도착한 이순신.

 

이순신을 마주친 왜구들은

겁에 질려 배를 버리고 도망갔고

그렇게 왜선 100여 척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위대한 이순신의 활약으로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지켜냈고

반면에 일본은 완전히 보급로가 끊겨

임진왜란에 희망이 생기게 된다.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승전보를 울린 이순신은

1593년 삼도 수군통제사 즉,

해군참모총장이 된다. 

 

한편 일본과 명나라는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히데요시는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데 

명나라 황제의 딸을 본인에게 

시집보내라거나

조선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를

일본에게 넘기면 물러나겠다는

소리를 하여 회담은 결렬되고

다시 1597년 정유년에

쳐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

 

그리고 이때,

질투의 화신이었던 두 남자. 

원균 장군과 선조,

이 두 조선 사람에 의해 

이순신은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이순신의 계속된 승전보와

지속적인 보살핌에

백성들의 민심을 크게 얻고 있었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는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균'은 이순신의 선배였는데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후배의 명령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질투한 원균은 말도 안 듣고

명령도 어기면서 끝내는

이순신을 모함까지 한다. 

 

이순신이 쓴 일기에 보면 이렇게

원균의 대한 혐오를 확인할 수 있다. 

 

 

경상 우수사 원균이 와서 보았다. 그 음흉함을 이를 길이 없다  <<계사년 2월 23일>>

경상 우수사 원균이 왔다. 그 술주정이 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망령된 짓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 <<계사년 5월 14일>>

경상 우수사 원균이 웅천의 적이 감동포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면서 들어가서 치자는 공문을 보내왔다.
그 흉계가 참으로 가소롭다. <<계사년 6월 5일>>

경상 우수사 원균이 정걸 충정수사와 함께 도착하여 적을 토벌할 일을 의논하는데,
원 수사가 하는 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흉측한 속임수들이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하고도 후환이 없을까? <<계사년 7월 21일>>

경상우수사 원균이 와서 영등으로 출정을 나가자고 독촉하는 데 음흉하기 짝이 없다.
자기가 거느린 배 25척은 모두 보내고 오직 7,8척만 가지고 와서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을 쓰고 일하는 것이 모두 이런 식이다. <<계사년 8월 30일>>

 

 

 

그리고 결국 질투의 끝을 보게 된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전쟁에서

이순신의 긴장을 끈을 놓지 않고

300여 척의 배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조정에서 

히데요시의 오른팔 '가토'가 

부산에 상륙한다는 첩보를 듣게 된다. 

이에 선조는 이순신에게 '가토'를 

잡아오라 명령하게 되는데

 

그동안 이순신은 

철저한 전략과 승리의 확신이 

있을 때만 싸웠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전투였다.

그래도 왕의 명령이라 가긴 갔는데

이미 가토는 도착했고

별 소득 없이 돌아오게 된다. 

 

이때 원균이 조정에 보고하기를,

 

"제가 갔으면 잡았을 텐ㄷ..ㅋ

이순신이라 못 잡았네요"

 

얼탱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당황스러운 건

이때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압송시킨 선조였다. 

 

질투에 눈이 먼 콤비가

일을 그르치고 마는데

 

결국 원균은 이순신 다음으로

제2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억울하게도 이순신은 옥에 갇힌다.

그렇게 이순신을 고문한 선조는

이순신을 조선의 명장

'권율 장군' 밑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석방 소식을 접하게 된

이순신의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러

한양으로 올라오던 배에서

병으로 별세하게 된다. 

 

충성을 바치고자 할진대 죄에 미쳤고,
효를 다하고자 할진대 부모는 돌아가셨도다.
어이하랴, 어이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이 어디 있으랴.
속히 죽느니만 못하도다

              정유년 4월 19일 (1597년 6월 3일) <<난중일기>>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를 통해

효심이 지극했던 그의 애통함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순신이 끌려가게 되고

대신 해군참모총장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오른 원균은

크게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순신이 못한걸 본인이 할 수 있다

호언장담 했으나,

막상 부산포를 공격하려니

주저하게 된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이상한 행동들만 하고 있었다. 

(그의 만행들은 이후 다시 정리하여 올릴 예정)

 

어쨌든 조정의 압박으로 

여러 차례 출정을 하긴 했는데, 

기적에 가까운 행동으로

이순이 힘들게 모은 판옥선

몇십 척을 날려버리는 불상사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를 보다 못한 '권율 장군'이 

부하들 보는 앞에서

원균을 불러다 곤장을 후려치게 된다. 

 

참담하다. 

 

하지만 더 참담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출격한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거의 전멸하게 된다.

 

조선 수군 전부인

이순신이 힘겹게 만든 300여 척의 함대가

박살 나게 되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원균은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이에 크게 당황한 선조는

이순신에게 머쓱하게 한마디 하는데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쩝..."

 

그렇게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게 된다. 

 

이때 다행히도 이순신의 부하

'배설 장군'이 칠천량 전투에서

미리 빼놓은 12척의 배가 남아있었다. 

 

선조는 남아 있는 배로는

적을 상대할 수 없다며

수군을 폐지하라 명령 내렸는데

이순신이 비장하게 말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

 

그리고 병사들을 불러 모아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 없는 해전이 시작된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힘겹게 영혼까지 끌어모아

1척이 더 보강된 13척의 함대와

병력을 과장하기 위한

수백 척의 어선들을 끌고

"명량" 이란 곳으로 향했다. 

 

이때 일본의 함대는 최소 133척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하게 되었지만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받아

센 물살을 이용하며 

일본 함대들을 좁은 골목에서

100척이 넘는 상대를 차례로

무너뜨릴 치밀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시작된 전투

 

 

100척 이상의 일본 함대들이

밀고 들어오게 되고

돌격을 외치며 나아가는 조선의 수군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오직 이순신이 탄 '대장선'만

앞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12척의 배는 명령을 어기고

이순신이 죽으면 도망갈 준비를

한 것이다. 

 

 

결국 믿기지 않게도 이순신 혼자

죽을 각오로 일본 함대 133척과

싸우게 된다.

 

여기서 더 믿기지 않는 것은

이 1척이 100여 척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와중

도망갈 준비만 하던 부하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싸움의 과정의 기록은 없으나

결국 기세가 눌린 일본군들은 

뼈에 각인된 두려움에 떨며

퇴각하기에 이른다. 

 

 

이때 이순신의 함대는 전사자와

부상자만 각 2명씩 있었을 뿐

함선은 단 1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게 절망적으로만 보였던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왜구를 격침시켜

다시 해상권을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쁘게도 그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게 되고

왜구는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1598년 11월 19일

마지막까지 이순신은 언젠가 또다시

침략할 수 있을 퇴각하는 일본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

명나라의 병력과 함께

'노량해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꽁무니 빼며 도망가는 일본 함대를 쫓던 와중

이순신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게 된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마침내 이 해전은 승리로 끝나게 되고,

7년간의 긴 전쟁도 막을 내리게 된다.

 

비록 왕이 본인을 버렸을 지라도

백성과 조선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충무공 이순신

 

23전 23승의 단 한 번도 

진적이 없는 무패를 기록하며

조선을 구한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성웅으로 남게 된다. 

 

 


 

대한민국의 구국 영웅 이순신 _ 후편

 

 

이미지출처 : 영화 <명량> 

                   네이버 지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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