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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임진왜란 시리즈 Ep.01 _ 안타까운 영웅 '신립'의 탄금대전투

by 파베누 202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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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선 중기의 무신 '신립은'

산에서 사냥하다 그만 길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슬프게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그 여인에겐 매우 딱한 사정이 있었는데

종 한 명이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여인만 살려둔 것으로 

여인은 종의 아내가 되던지 아니면

종의 손에 죽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신립은 그녀를 지켜주겠다 약속하였고

한밤중에 나타난 종을 활로 쏘아

죽이게 된다. 



그러고 이만 가려는 신립에게 여인은 

간곡히 부탁했다. 



"이제 저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제발 저를 거두어 주시지요"



하지만 이미 혼인한 몸이었던 신립은

이 부탁을 거절하며 떠났고 

절망에 빠진 여인은 이튿날 

집에 불을 지르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은 조정의 명을 받들어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산세가 험한

'조령'에 진을 치려한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죽은 여인이 나타나



"험한 주련보다는 드넓게 펼쳐진

충주 평야에 진을 치는 것이 

왜적을 소탕하기 좋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를 들은 신립은 곧장 평야가 펼쳐진

탄금대로 진을 옮겼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신립의 부대는 전멸하게 되었고

결국 신립은 자결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일을



'여인이 한이 맺혀 원귀가 되어 신립을 

죽게 한 것'

이라 말한다. 






신립 장군


위 설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신립'

그는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칭송받던

인물이었다. 

신립은 뛰어난 능력과 무력으로 

22살에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쳤다.

때론 너무나 터프한 성격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하였지만 그는 화끈한 장수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활쏘기.

활을 쐈다하면 여진족 장수 헤드샷은 

백발백중이었고 

홀로 수십 명을 때려잡는 것도 기본이었다. 

또한 그는 기병의 달인으로

말만 탔다 하면 썬더 같은 스피드로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고

그가 지나간 자리는 홍해 갈라지듯이

길이 생겼으며 주위엔 적들의 모가지만 

남아있을 정도였다. 



특히 그는 3만에 달하는 여진족의 반란인

'니탕개의 난'을

미친 활약으로 진압하였다. 



용맹함과 피지컬만큼은 신립과 견줄만한

이는 없었다. 



이처럼 백성들이 열광하는 

조선 최고의 스타 신립은

그 어떤 누가 덤벼와도

뚝배기 깰 자신이 있었는데



하지만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지략이 부족했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때는 1592년

일본이 침략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고

이틀 만에 부산이 함락되며 일본군은

무서운 속도로 북진하였다. 

사실 조선에 그동안 너무나 긴 평화가 이어져

군역 체계가 엉망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쟁만 해대던 일본군에

조선군은 속절없이 패배했다.



일본의 가장 빠른 선봉대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미 경상도의 방어선을 뚫고

충청도를 향해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이에 충격받은 '선조'는 멘털 잡기가 어려웠다.

일본군이 중요한 방어선인

충주의 조령을 넘는다면

그 이후로는 한양까지 하이패스라

순식간에 점령당할 위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조정은 치트키를 빼들었다.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이 지켜줄 것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신립에 대한 믿음이

어마 무시했고

그가 나선다면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선조는 곧바로 신립을 출정시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임무는 당연히 한성으로 향하는

충주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조선군이 8천이다, 1만 6천이다

말이 많은데 8천으로 이야기함)

 

 

 

판단 실수로 인한 패배


8천 여명의 군사를 이끌게 된 신립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느 장소에서 전쟁할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때 뛰어난 장수 김여물이 말했다



"당연히 험준한 산맥으로 이루어진 

조령에 쳐야 수월합니다."



우리에게 문경새재로 알려지기도 한 

조령인데, 지리상으로 산세가 험하여

방어진을 치기에 최고인

그야말로 천연 요새였다. 



하지만 신립은 강력하게 NO를 외치며

더 뒤쪽인 탄금대 쪽으로 진을 치겠다

선언하게 된다. 

도대체 왜 여러 장수의 말을 안 듣고 

거기에 쳤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러 이유들이 존재한다. 

 

 

 

 

당시 일본군은 세 개의 부대로 진격 중이었고

조령 말고 추풍령, 죽령으로 우회하여 

공격할 확률도 있었다. 

그래서 동선을 예측 못하고 잘못하다 

쌈 싸 먹힐 바에는 더 뒤로 이동하여 

강을 등지고 탄금대 지역에 진을 치겠다

결정한 것이다. 

또한 험준한 조령과 달리 

탄금대는 평야지대였다. 



사실 만주에서 여진족과 싸우면서 성장한

궁기병의 신이었던 신립은

산속보단 평지에서 홍해 가르듯

싸우는 것에 자신감이 넘쳤다.

일본군의 다수가 보명이었으니

기마병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이론상으로 가능한 부분이었다.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조령을 포기하고

탄금대에 진을 치게 되었지만

신립은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일본의 조총이다.



신립은 당연히 조총 한번 쏠 때 

여러 발 쏠 수 있는 화살이 더 유리하다 생각했고

사거리도 활이 훨씬 길었으니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류성룡이 일본군은 조총을 가지고 있는데

괜찮냐 물었을 때 

신립은 대답했다. 



"비론 조총이 있다고 하더라고 

어찌 쏠 때마다 다 맞힐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령을 손쉽게 넘고 

신립과 한판 붙게 되지만,

처참하게 패배한다.



이 평지는 논과 밭이 많이 

질퍽한 지역이었고

옘병 심지어 전날 비가 내려

발이 빠지기 일쑤였다. 

궁을 든 기마병이 진격하는데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고 

활의 명중률도 개판...

반면에 훈련된 일본군들은

앞쪽, 옆쪽 사방에서 소총을 

살뜰하게도 쏴댔다. 



무엇보다

소수의 주력부대만을 지휘하던 신립이

농민 풀신들을 끌어 모아 만든

훈련도 확실히 되지 않았던 

대규모 조선군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뒤로 물러나며 남한강까지 후퇴한 신립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모든 병력이 거의 전멸한 상태에서

큰 죄책감을 느낀 신립은 

강에 뛰어들어 자결하고 말았다. 



또한 조령에서 싸우자고 건의한 김여물도

끝까지 일본군과 싸우다 남한강에 

투신하였다. 



이 탄금대 전투의 패배 소식을 들은 조정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임진왜란 시리즈 내내 패닉에 빠짐)



전쟁영웅 신립이 대패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싸울 의지가 꺾여버린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군을 재정비해 싸우는 것이 아닌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는 신의 한 수를 택한다. 

선조는 부리나케 평양을 거쳐

강만 건너면 명나라로 갈 수 있는 의주로 

도망가 버렸다. 



결국 조선이 먹히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어버린 상황에

조선을 구한 것은 왕도, 양반도 아닌

이름 없는 백성들과

시골의 선비들이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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