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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임진왜란 시리즈 Ep.05 대동강 전투와 잊어선 안될 영웅 '원연'

by 파베누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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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작전에 휘말려 허무하게

임진강 방어선을 날려버린 덕분에

왜군은 손쉽게  평양을 향해 진격했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대동강이라는

거대한 강을 사이에 두고 방어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평양에 있던 선조는

명나라와 맞닿아 있는 의주로 피난 가면서

세자 광해에게 '분조'를 명한다.

 

"오늘 이후로는 세자로 하여금 국사를 임시로 다스려 관작의 제배나 상벌 등의 일을
모두 편의에 따라 스스로 처결할 일로 대신들에게 이르라."

     -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13일 신축 8번째 기사 -

 

그렇게 조정은 둘로 쪼개져

세자에게 왕의 임무를 맡기고

바로  떠나버린 선조였다.

 

 

임진왜란 시리즈 Ep.05 대동강 전투와 잊어선 안될 영웅 '원연'

 

 

이때 광해군은 정말 멋쟁이 그 자체였다.

아버지와는 달리 평양성에 머무르며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던 6월 14일(1592년)

선조가 이렇게 말했다.

 

"명나라에 조선을 바치고 나 혼자라도 사는 게 어떠한가?"

 

이에 신하들은 이게 뭔 소리인지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며 들고 일어섰다.

하지만 조선의 임금 선조는 너무너무 무서웠다.

일본의 기세가 어마 무시했고

곧 있으면 잡힐 것 같기도 하고,

나라고 나발이고 조선을 명나라에 편입시키면

자신의 안위와 권력은 그나마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신하들이 절대 안 된다!

반대해도 선조는 눈물을 흘리며 선언했다.

 

"편입 가능한지 명나라에 자문을 보내라"

 

참으로 옹졸한 '선조'

 

 

#대동강 전투 _ 그 남자 김명원

 

한편 

대동강에서 방어진을 친 조선군들은

또 한 번 코미디를 시전 하게 된다.

대동강을 지키라는 선조의 명을 받은 또 '그 남자'

'김명원'

한강, 임진강을 말아먹고

대동강까지 지키게 된 김명원은

다시 한번 명예회복을 위해 눈을 불태웠다. 

적들은 타고 건너올 배가 없었기에

조선군이 조금 유리했지만

조선군이 5,000명이 안 되는 반면,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은

2만이 넘었기에 수적 열세였다.

그런데 하필 이때 또 비가 오질 않으니

대동강의 수심이 얕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왜군들은 수심이 얕아져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_ 대동강 사진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불타오르는 남자 김명원은

한 밤중 수백 명의 군사들에게

왜군을 공격하고 오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비하지 못한

수많은 왜군들을 죽이며 조선군의 사기가 올랐다.

몇 번 말아먹더니 드디어 한 건 한 김명원!

 

하지만

왜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조선군은 재빨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도망을 가려는데

너무 정신이 없었는지 배를 찾을 수 없었다. 

끝내 조선인들만 아는 수심이 얕은 강으로 건너갔다.

무사히 목숨을 건진 조선군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왜군들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 저기로 걸어서 건너가면 되는구나!"

 

그렇게 대규모의 왜군들은

손쉽게 대동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명원은

평양성을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평양은 왜군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 선조의 눈물

 

한편 6월 26일(1592년)

명나라에 조선을 넘기고 권력을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나라의 답장이 왔다. 

선조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그 답장을 들여다봤더니

 

"거절한다"

 

 

답장의 내용은 '관전보'라는 빈 관아에

선조를 거처시키고 수용인원도

100명을 넘지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관전보는 요동의 변방 주둔지로

여진족과 국경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그야말로 유배지나 다름없는 같은 곳이었다.

사실 명나라 입장에서도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한나라의 임금이 징징대면서 백성 버리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도망이나 치고

심지어 망명하겠다며 공식 요청까지 해오니

일본과 편먹고 명나라를 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거절 의사를 전하는 뜻으로 답장한 것이다. 

 

이처럼 명나라의 거절에

선조는 참으로 창피할 수밖에 없었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 버리고

명나라로 가려고 고집부려서 물어봤는데

이런 대접이나 받고 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쿨하고 뻔뻔하게

 

명나라에서 우리나라가 내부를 청한 자문을 보고 
장차 우리나라를 관전보의 빈 관아에 거처시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상이 드디어 의주에 오래 머물 계획을 하였다. 

   -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6일 갑인 7번째 기사 - 

 

 

"명나라 안 가고 의주에 오래 머물 것이다!"

라 하였다. 

 

 

# 형보다 나은 아우 "원연'

 

한편 6월 6일 (1592년)

역대 가장 어이없는 대규모 패전

'용인 전투'가 벌어졌을 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영웅이 등장한다. 

 

몽둥이질을 해도 시원치 않을 '원균'이 아닌

원균의 동생

'원연'

 

원균은 기상천외한 패악질로 유명한데

동생 원연은 엄청난 영웅이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을 준비하던 원연은

왜군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자

고향인 진위현(현재의 평택)에서

의병을 모집했다. 

원연이 의병을 모집하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만큼 지역에서 명망이 높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용인 전투에서 5만 명의 관군을

박살 냈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용인으로 출동한다. 

 

자신감이 뿜뿜한 와키자카의 기병대는

원연의 기병대를 발견하고는

무조건 돌격을 시전 했다.

 

그런데 원연은 그들과의 정면승부 대신

왜군들을 매우 험난한 산길로 끌어들였다. 

산길은 길목이 좁아 방향 전환이 쉽지 않아 

기병대에게 매우 불리한 지형이었는데

이를 알았던 원연은 본인에게 익숙하면서도

매우 험난한 지형인 곳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유인책에 휘말린 왜군들은 결국 포위되었고

산속에 매복하고 있던 의병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와키자카의 기병대는 박살 나게 된다.

 

5만의 조선군을 이긴 일본 정규군을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의병으로 무찌른

그야말로 대승이었다. 

이처럼 형과 딴판인 원연은

성품도 갖춰진 훌륭한 인물이었다. 

이 승리의 공으로 '적성 현감'에 올랐고 

그 고을의 백성들이 원연을 잘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597년 정유재란이 다시 발발했을 때 

*정유재란 _ '화의교섭'의 결렬로 1597년에 일어난 재차의 왜란

형이었던 '원균'이 질러놓은 일로

왜군이 난리 치며 들어오자 형 대신 책임지려

의병장으로 복귀하였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하지만

원 씨 가문의 위대한 명장으로

모셔지고 있는 '원균'

'원연'은 친형 '균'이라는

거대한 암적인 존재에 가려져 

현재 그를 기억하거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형보다 나은 아우 '원연'은 

조선을 지킨 명장이자 충신이었다. 

 


 

임진왜란 시리즈 Ep.05  

대동강 전투와 잊어선 안될 영웅 '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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