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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조선 악녀가 낳은 '작은악녀' _ 호명옹주

by 파베누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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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전 포스팅 '조선왕조가 인정한 악녀 _ 소용 조 씨'와 연관되는 내용입니다.)

 

조선 제16대 왕  '인조'

인조라는 임금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인물이었다.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뒤 왕위에 올랐지만

곧바로 '이괄의 난'이 터져  도성을 떠났고

다음으로

'정묘호란'이 터져 또다시 짐 싸서 피난을 갔고

이번엔

'병자호란'이 터져 피난을 떠난

거의 '피난 마스터'였다. 

 

특히 병자호란 때 청나라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라는

한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는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었다. 

역대 조선에서 당할 치욕이란 치욕은

혼자 독차지하였다. 

 

삼전도의 굴욕이 있은 후

궁으로 돌아온 인조였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왕비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자식들까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기 때문이다.

그런 절망적이고 침울한 상황 속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여인

궁녀 '조 씨'

 

너무 예쁘다. 

 

세상 최고의 교태에 푹 빠진 인조는

외로운 마음을 그녀 곁에서 달래기 시작했다. 

이런 무수한 총애를 받게  된 조 씨가 

축복스럽게도 그해 겨울,

인조의 아이를 하나 낳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밑도 끝도 없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불행한 인생을 보내게 된 여인

'효명 옹주'였다. 

 

 

 

 

조선 악녀가 낳은 '작은 악녀' _ 호명옹주

 

 

#호명옹주의 어린시절

 

젊고 아름다운 '조 씨'의 출구 없는 매력에 

단단히 빠진 인조.

이런 그에게 조 씨의 배에서 나온 '효명 옹주'는

축복 그 자체였다. 

43세의 늦은 나이에 보게 된 딸이었으니

아주 애지중지 아끼며 보호하였다. 

조 씨와 인조는 효명 옹주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희망하며

딸의 무병장수를 위한 온갖 물건,

부적 등 비방을 일삼았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효명 옹주는

아주 당돌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녀가 11살이 되던 해에

인조는 무척이나 아끼는 그녀를 시집보내게 되는데

이때 야망가이자 최악의 악녀였던 '조 씨'는 

당대 제일 잘 나가는 권신 '김가점'에게 빌붙어

그의 손자 '김세룡'과 혼인시키기로 마음먹게 된다. 

조 씨는 김세룡의 사주팔자까지 조작하였고

결국 결혼에 성공시키게 된다. 

물론 그토록 애끼는 딸을 시집보내니

결혼식을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효명 옹주를 낙성위 김세룡에게 시집보냈다. 
옹주는 조 소의 소생이다.
김세룡은 김식의 아들이고 김자점의 손자였다.
이때 조 소의 비할 데 없는 굄을 받았으므로 
옹주와 부마의 외복과 기물이 모두 극히 풍족하고 사치스러웠다.

-인조실록 48권, 인조 25년 8월 16일 갑신 4번째 기사 -

 

 

혼인에 쓰인 의복과 기물이 모두 극히 풍족하고 사치스러웠다고 전해진다. 

 

 

#호명옹주 인성논란

 

악랄한 조 씨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은 효명 옹주는

매우 오만방자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

 

궐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을 때 

'효명 옹주'와 '인평대군'이 다툼을 벌이게 된다.

옹주는 이복오빠 '인평대군'의 처(아내)보다

윗자리에 앉겠다 주장하였는데

인평대군은 옹주보다 15살이나 많았으며

후궁의 자식이 아닌 정비의 자식이었으니

말도 안된다며 다툼이 생겼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꾼인 인조는

며느리보다 옹주를 윗자리에 앉히게 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인평대군 부부와 효명 옹주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게 된다. 

어쨌든 효명 옹주가 혼인하고 2년 뒤 출궁 하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녀에게 비극이 시작되는데...

 

 

#나락의 길로 가는 효명옹주

 

그녀가 사가로 떠나자마자 인조는 병상에 드러눕게 된다.

그동안에도 몸이 좋지 못했던 인조는

자신의 일을 예상했는지

세자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게 된다. 

 

"조 씨의 자녀들을 잘 부탁한다."

 

그렇게 인조는 생을 마감하게 되고

다음으로 '효종'이 즉위하게 된다. 

한편 악랄한 야망가였던 조 씨는

인조가 죽어도 효종의 비호를 받으며

영원한 권세를 누릴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효종은 그녀의 야망에 동참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곧바로 거슬리는 권신 '김자점'을 파직시켜 귀양 보냈고

조 씨를 멀리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조와 김자점 믿고 깝죽거리던 조 씨에게는

크나큰 불안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머리를 굴렸다.

 

'저주할 테다'

 

그리하여 조 씨는 효명 옹주와 같이

열심히 저주하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꼬리가 너무 길었다. 

한 여종이 이렇게 자백을 한 것이다. 

 

"장차 국왕 부자를 모해하고 낙성위 김세롱을 입금으로 추대하려 하는데,
너희들 말고 누구와 일을 이루어 나가겠는가
다행히 성사가 되면 나만 크게 이롭게 될 뿐 아니라
너희들도 장차 안락한 생활을 향유할 것이며
족당에 이르기까지 부귀를 누리지 않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기꺼이 따르겠는가"

- 효종실록 8권, 효종 3년 3월 4일 을해 3번째 기사 -

 

 

김세룡은 효명 옹주의 남편이었으니

이는 즉, 자신의 사위를 임금으로 추대하겠다는 역모를 계획한 조 씨였다

이뿐만 아니라 효명 옹주가 왕실을 저주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이 밝혀졌다.

 

뼛가루를 화장품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왕의 처소에 드나들면서 살짝 넣어두거나 몰래 뿌리게 하여
방과 문지방 사이의 구역에 거의 빠진 곳이 없었다.
그리고 승니로 하여금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만들게 하여 자신의 복을 기원하게 하였는데
국가에 화를 끼치려고 흉악한 행동을 자행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 효종실록 8권, 효종 3년 3월 4일 을해 3번째 기사 -

 

 

결국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효종은

조 씨에게 사약을 내리고

김자점과 김세룡의 사지를 찢어 죽이게 된다. 

그래도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해서 인지

효종은 효명 옹주의 목숨만큼은 지켜주었다. 

대신 옹주 작위를 박탈하여

김세룡의 처(아내)로 불리게 하였고

유배를 보내게 된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이처럼 한순간에 나락 가게 된 '효명 옹주'

남편을 잃었을 때 그녀의 나이 15세였으니

이때부터 64세로 죽을 때까지 그녀는 홀로 쓸쓸히

불행한 인생을 보내게 된다. 

 


 

조선 악녀가 낳은 '작은악녀' _ 호명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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