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역사

평생 쓸쓸히 살다 떠난 비운의 왕비 _ 정성왕후

by 파베누 2022. 6. 24.
728x90

숙종과 무수리 최 씨 사이에서 낳은 아이
연잉군 (영조)
그의 어머니인 무수리 최 씨는
궁에서 청소일을 하던 몸종 출신이었다.
(장희빈 포스팅 참고 )

이처럼 어머니가 미천한 무수리 출신이었기에
연잉군은 훗날 '영조'로 왕위에 올라서도
정통성에 있어 큰 콤플렉스를 지닌 왕으로
유명하다.

이런 그에게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한
비운의 왕비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조선왕실 가장 쓸쓸한 삶을 살았던
정성왕후였다.

평생 쓸쓸히 살다 떠난 비운의 왕비 _ 정성왕후



1724년 31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영조'
그는 어릴 적 11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 부인이 바로 '정성왕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부부의 관계는
역사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영조는 왕이 된 후에
그녀가 정실 왕비임에도 창덕궁으로
보내버리곤 본인은 경희궁에 머무르며
눈길 한 번을 주지 않게 된다.
왜 이렇게 부인한테 쌀쌀맞게 대한 것인가.
그 원인으로 둘의 첫날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20년 전 영조와 정성왕후는 결혼을 하여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그때까진 영조도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

서로 이야기도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그때 갑자기 영조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유독 하얗고 고운 손이었다.


그래서 어찌 그리 손이 곱냐고 감탄하며 물으니
그녀는 대답했다.


"반가에 태어난 덕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이에 영조는 바로 정색을 하며 생각했다.
'내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이라 손도 거칠고
두꺼운데 어머니를 비하하는 것이 분명하다 '


이렇게 정성왕후는 첫날밤에 소박맞게 되고
이때부터 둘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는 야사이지만

정말 영조는 그녀의 침소를
한번 들리는 날이 없었으며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살아갔다.
당연히 둘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고
그렇게 정성왕후는 긴 시간을
혼자 쓸쓸히 보내야만 했다.

 



반면에 영조는 사랑하는 후궁들이 있었으니
그 사이에서 자식들도 낳고 잘 지냈다.
보통 여인이라면 질투 한번 할 텐데
정성왕후는 질투 한번 하지 않았고
오히려 후궁의 자식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줄 정도로
고운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특히 아꼈던 아이가
바로 '사도세자'였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최악의 부자관계로도 유명한데
영조는 매사 사도세자에게

사사건건 잔소리 하며
구박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마음 아파하는 사도세자를
정성왕후는 감싸고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 부자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언제나 사도세자의
든든한 편이 되었다.



한편
영조는 이런 그녀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중전(정성왕후)의 회갑이니 하례를 드리게 하자"

는 우의정 김상로의 요청을 냉담하게 거절하였다.
당시에 60세(환갑) 이상은 장수를 뜻하였다.
그렇기에 큰 행사인 환갑잔치를 열어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 축하마저 받지 못하고
씁쓸하게 지나가야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성왕후는 병이 들어 병상에 누워 있어도
영조는 단 한번 찾아오는 날이 없었다.
결국 그녀가 세상을 떠나서야 들르긴 했는데
정성왕후는 안중에도 없고
옆에 슬픔에 잠겨 통곡하고 있는 사도세자에게
한마디 할 뿐이었다.



"옷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 "

그렇게 정성왕후는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역사상 33년의 가장 긴 왕비 생활을 한 왕비.
하지만


폐비가 되지 않았을 뿐,
내쫓기지 않은 조선의 왕비 중 제일
비극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죽어서도
영조의 연민조차 받지 못했다.
정성왕후가 죽은 시기에
영조의 사랑하는 딸의 남편
'정치달'이 죽게 된다.
이에 영조는 왕비의 빈소를 지키지 않고
사위의 문상을 가게 된 것.
이는 예법에도 어긋한 행동이었기에
대신들이 엎드려 말했다.
"어찌하여 이런 망극한 일을 하시려 합니까!"
하지만 영조는 반대하는 신하들을 해임시키고
쿨하게 갈 길 가버린다.
참으로 냉장한 사람이다.

영문도 모른 채 일평생
남편의 사랑 한번 못 받았던
정성왕후는 지금의 서오릉에 잠들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녀의 묘 옆자리는 비워진 채
홀로 쓸쓸히 남겨졌다.








이미지 출처 : 사도 (영화)



평생 쓸쓸히 살다 떠난
비운의 왕비 _ 정성왕후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