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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역사 &미스테리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만든 '바벨탑'의 발견

by 파베누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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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허황된 자만과 욕망을 얘기할 때 흔히 비유하는 단어가 있다.

[바벨탑]

 

중세유럽의 바벨탑 상상화
중세유럽의 바벨탑 상상화 <출처 : 나무위키>

 

이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데, 인간들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자, 분노한 신이 인간들의 언어를 제각각으로 만들고 사회를 와해시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Therefore its name was called Babel, because there the LORD
confuse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re the LORD dispersed
them over the face of all the earth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고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창세기 11장 9절

 

이처럼 바벨탑이 주는 의미와 신비로움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과거에는 그림으로, 현대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벨탑'은 오랜 논쟁이 이어진다.

바벨탑은 하나의 설화가 아닌 실제 존재했던 건축물이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 이라크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지인 '지구라트' 중 하나가 바벨탑이라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바벨탑은 정말 존재했던 걸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욕망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만들어낸 설화인 걸까?

이번 글은 바벨탑에 관한 소문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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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도전한 인간들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의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바벨탑을 처음 세우도록 지시한 것은 노아의 대홍수 사건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첫 번째 왕. 니므롯(아시리아 최초의 왕)에 의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대홍수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는 큰 혼란을 겪었던 이들이 또다시 신의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 물에 잠기지 않을 만큼 높은 탑을 지으려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축의 의미에는 탑을 하늘에 닿을 만큼 높게 쌓는다면 천국에 가까워져 신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욕망은 바벨탑이 완공되지 못해 실현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성경에서는 신이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해 하루아침에 인간들의 언어를 수십 가지로 나누어 혼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는데 즉,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던 인간들이 갑자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바벨탑 건설이 중단되었다는 얘기다. 

이후 공통의 언어를 잃은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끼리 민족을 이뤄 흩어져 살기 시작했고, 오늘날 인류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이런 이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벨탑의 '바벨'은 혼란이라는 뜻도 있어서 '혼란을 가져다준 탑'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성경에서 설명하는 바벨탑 이야기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하지만 실체가 남아있지 않은 바벨탑이 논쟁 주제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바벨탑을 직접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약 400년, 자신의 저서에 재건된 바벨탑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기록해두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성경의 최초 바벨탑이 붕괴되고 약 천년이 지난 후 당시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신바빌로니아 2대 왕) 바벨탑을 재건했는데, 그 크기와 방식이 최초 바벨탑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똑같이 재현했다며 상세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탑은 아직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가로세로 높이가 180큐빗으로 꼭대기에는 신전이 있으며 모든 층을 둘러싸듯이 나선형 통로가 나있다"

그는 자신이 본 바벨탑을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뿐만 아니라 이 탑은 과거 몇 차례에 걸쳐지었다가 무너지고를 반복했고, '건축을 위해 벽돌 8500만 개가 사용되었다' 등의 내용도 남겨두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이 세상에 알려지자 학자들은 바벨탑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탐사에 나섰다. 그리고 기록이 상세하다는 것을 근거로 바벨탑이 실재했을 것이라 추정하며 유력한 후보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바로 북부 사마라에 있는 말위야 탑이다. 

851년 건설된 말위야 탑은 52m라는 거대한 높이와 나선형 계단이 건물을 휘감아 올라가는 독특한 형태로 바벨탑으로 여겨지곤 했다. 실제로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때 바벨탑 그림은 말위야 탑을 묘사한 듯한 나선형 모양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학자들의 추측일 뿐 명확한 증거가 없어 바벨탑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을 수 밖에 없었는데 19세기말, 학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한다. 바벨탑의 실재 여부를 판단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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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의 발견


1899년,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는 전설의 바벨탑을 찾기위해 이라크에서 발굴을 진행했다. 그 발굴은 무려 13년간 이어졌고, 마침내 지하 20미터에 묻혀 있던 바빌론의 성문 '이슈타르'와 왕궁, 성벽을 발굴하면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게 된다. 전설로만 여겨지던 바빌론을 현재로 불러낸 것이었다. 

 

이슈타르 문
이슈타르 문 (바빌몰의 성문)&nbsp;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콜데바이는 이런 역사적인 발견에 바벨탑도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가졌지만, 아무리 발굴을 진행해도 바벨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데바이는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된다. 주민들이 땅속에서 벽돌을 채취해 가는 것을 목격한 것인데, 콜데바이는 그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에테멘앙키'라 불리는 터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건물터가 확연히 드러나자 이곳이 바벨탑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터의 너비가 91.5m로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크기와 불과 1.5m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1913년, 콜데바이의 주장이 주목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벨탑의 상세한 크기가 기록된 점토판이 발견된 것이다. 이 점토판은 종이가 없던 바빌론 시대의 교과서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바빌탑의 크기를 구하는 문제가 출제되어 있었고 밑면과 높이가 각각 91m라고 적혀있었다. 콜데바이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0년대 바벨탑의 실재와 관련된 또 다른 증거가 발표된다. 

런던의 한 역사학자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벨탑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진 석판을 공개한 것이다. 전문가는 석판에 그려진 인물을 네부카드네자르 2세로 추정했고, 지구라트 형태를 한 건축물이 바벨탑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석판을 자세히 보면 7층으로 구성된 석탑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석판에 적힌 상형문자였다. 이 문자들은 '에 테멘 앙키, 지구라트, 카 딩기 라키'라고 적혀있었는데 맨 하단에 있는 '카 딩기 라키'는 수메르어로 '바빌루'라고 읽는다고 한다.

뜻을 풀이하자면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자 지구라트 바벨탑' 이라는 의미라고 하니 과거 바벨탑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였는데, 반대 주장도 존재한다. 발견된 증거들의 연대와 성경 속 바벨탑의 연대가 일치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성경 속 '바벨탑'의 진실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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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록은 남아있지만, 실체는 남아있지 않은 전설의 바벨탑.

인간의 오만함으로 신의 형벌을 불러일으킨 혼돈의 탑은 정말 실존했던 걸까.

아니면 오만하지말라는 자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설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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