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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역사 &미스테리

이집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무덤'

by 파베누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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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한데, 지난 약 500년 동안 70여 개에 달하는 연극, 45개의 오페라와 5개의 발레 공연이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으로 꼽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런 클레오파트라를 이야기 할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이 있다. 

바로, '아름다움'

실제로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고, 그녀가 죽고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여성을 설명할 때면 클레오파트라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말로 통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이집트의 미스터리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오늘날까지 그녀의 인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과 무덤마저도 비밀에 휩싸여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가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옥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무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은 왜 찾을 수 없는 걸까?

오늘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 복권된 얼굴
클레오파트라의 복원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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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 앞서 이야기했듯 그녀를 모티브 삼은 작품들이 과거에는 미술과 문학으로 현대에는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클레오파트라'는 이름이 아닌 호칭이다.

과거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남성 통치자를 프톨레마이오스, 여성통치자는 클레오파트라, 베레니케, 아르시노에라고 불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BC 304~3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마케도니아 - 그리스 계열의 왕가. 로마 공화정에 정복될 때까지 이집트, 키레네(현재 리비아) 시리아 및 에게 해 일대를 다스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도 사실 일곱 번째 클레오파트라 이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 7세'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면 실제 모습을 어땠을까. 많은 사람들이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검은 단발머리와 짙은 색 피부의 아랍계 여성의 모습을 생각할 텐데, 사실 클레오파트라의 실제모습은 학계에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그녀의 인종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그리스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이집트를 장악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그리스 귀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집트 파라오의 전통에 따라 철저한 근친혼을 유지했다고 하니 다른 혈통이 섞였을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했는데, 아직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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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양탄자 일화


클레오파트라의 미스터리를 얘기하기 전 그녀가 살아있던 시대에 대해 살펴봐야겠다. 

기원전 51년,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과 결혼하며 공동 파라오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모든 역사가 그렇듯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매간의 권력다툼이 심해지며 공동정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는 여러 가지 정치세력에 의해 이집트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그녀의 인생이 끝났다면, 클레오파트라가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역사에 길이 남을 기회를 잡게 되는데, 바로 이집트에 찾아왔던 로마의 최고 권력자, 카이사르를 만난 것이었다.(율리우스 카이사르 :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군인)

이들의 첫 만남은 지금까지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당시 이집트에서 추방당한 신분으로 궁궐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클레오파트라는 한 가지 묘안을 내는데, 바로 카이사르에게 선물한 양탄자 안에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한 방법이지만 결국 그녀는 카이사르를 만나는 데 성공했고,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물론 양탄자 일화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둘은 연인 사이가 되었고 클레오파트라는 동생을 제치고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3년 뒤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암살되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세상을 떠나자 클레오파트라의 권력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때문에 그녀는 이집트의 권력을 차지했던 방법을 다시 한번 이용한다. 바로 로마의 새로운 권력자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낸 것이다. 물론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넘어간 것을 두고 서로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당시 이집트는 매우 부유했지만, 다른 나라의 침입을 막아낼 군사력이 부족했고 로마는 대규모 군대가 있었지만, 많은 전쟁을 치르며 돈이 부족한 상황이라 서로 손을 잡아야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연인관계가 되는데, 이들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다. 로마에는 안토니우스와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던 옥타비아누스가 있었고 (율리우스 옥타비아누스 : 로마 제국 초대 황제) 결국 이 둘은 로마의 패권을 두고 악티움 해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 해전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는 겨우 피신하는데 '클레오파트라 죽었다'라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클레오파트라도 안토니우스의 죽음에 충격받아 얼마 뒤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바로 행방이 묘연한 그녀의 무덤과 알 수 없는 죽음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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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순탄치 않았던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관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독사에 의한 사망설'이다.

포로로 잡혀 모욕적인 죽음을 예감한 그녀가 바구니 속에 독사를 숨겨와 스스로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대 영웅들의 전기를 서술한 책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를 건드려 자신의 팔을 물게 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쳐오면서 끊임없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독사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힘들고 번거로운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웅전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뚜렷한 증거나 확실한 목격자에 대한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의 극적인 죽음은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등 화가와 작가를 통해 각색된 것일 뿐, 그녀가 사망한 정확한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일각에서는 그녀가 타살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안토니우스에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연인인 클레오파트라까지 제거하는 것이 완전한 승리라 여겼을 것이고, 그 때문에 그녀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추측일 뿐,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따라서 전 세계 고고학자들은 이 의문을 해결할 가장 확실한 증거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을 찾기 위해 수 세기 동안 탐사해 왔는데,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라고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남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함께 매장되었다"라는 기록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을 지진으로 물에 잠겼을 것이고 그녀의 무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는 주장이 지지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1990년대 말 이집트 해협을 수색하던 탐사팀이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상 등 다수의 유물과 성벽, 기둥들의 잔해를 발굴해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발굴팀을 이끌었던 프랑스 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 박사는 "발견된 성벽과 기둥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도시가 지진으로 파괴된 뒤 수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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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놀라운 발견은 가장 최근인 2022에도 있었다. 이집트의 한 신전 아래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으로 이어질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터널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하 13m에 위치한 터널은 길이가 약 1.3km, 높이가 2m에 달하는 터널의 구조가 고대 그리스 양식과 매우 흡사하고, 뿐만 아니라 신전 주변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그려져 있던 동전과 그녀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흉상도 발견됐고 사원을 향한 채 매장돼 있는 미라도 발굴돼 '해당 지역에 왕릉이 세워졌을 것'이라는 연구팀의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해당 연구팀은 "만약 우리가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을 발견해 낸다면 이는 21세기 들어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업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고고학계 역시 "고고학 역사가 뒤바뀔 수도 있다"며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 최후의 클레오파트라.

우리에게 그녀는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학자들은 그녀의 진짜 매력은 내면에 있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막강한 절대권력을 지켜낸 비법이 미모가 아닌 지성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 중 유일하게 고대 이집트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똑똑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자주권을 지키려 노력했던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이기 때문이다. 

2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클레오파트라의 미스터리.

과연 새롭게 발견된 고대 터널이 그녀의 미스터리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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