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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역사 & 미스테리

세계 문명 중 가장 신비로운 문명 '마야 문명'

by 파베누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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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시작


인류의 문명은 대부분 큰 강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황하, 인더스, 나일 모두 그렇다.

온화한 기후와 큰 강을 끼고 있어야 토지가 비옥해지고, 

그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농작물들을 기반으로 인류의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세계의 여러 문명을 들여다보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문명들도 존재한다. 

중남미의 고대 문명 중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알려진 마야 문명도 그중 하나이다. 

마야 문명은 커다란 강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험준한 밀림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던 마야인들이 어떻게 밀림 속에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는지도 크나큰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게다가 마야 문명은 사회와 경제 제도, 천문학, 수학, 그리고 예술적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중남미 고대 문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부분도 마야인들이 어떻게 문명을 발달시켰는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마야인들은 한순간에 자신들의 도시를 버리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야문명이 외계인의 문명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야 문명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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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


마야 문명은 기원전 2천 년부터 약 17세기까지, 3800여 년에 걸쳐 번영을 누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멕시코 동남부 일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북부, 온두라스 서부 일부가 마야 문명의 영향권이었다.

마야 문명이 신비로운 문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위치에 있다.

이들이 도시를 세운 곳은 열대 우림 한가운데인데, 이곳은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기 때문에 독거미와 같은 해충에 노출될 위험이 크고, 덥고 습한 날씨로 전염병이 퍼지기 쉬운 환경이다. 

게다가 마야 문명의 대표 유적지 중 하나로 꼽히는 '티칼'에는 대형 피라미드와 궁전, 신전 등 다양한 석조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개수가 무려 3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마야인들은 이렇게 큰 건축물을 만들었음에도 밀림과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도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무덤 속에서 바퀴 달린 장난감이 출토된 것을 봤을 때 수레바퀴의 용도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야인들은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자재들을 직접 날랐다고 한다. 

때문에 마야인들이 왜 굳이 수많은 인력과 노동력을 이용하여 밀림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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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의 신비


쿠쿨칸의 신전 엘 카드티요
쿠쿨칸의 신전 엘 카드티요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마야 문명의 미스터리는 고도로 발달된 그들의 수학, 천문학에서도 이어졌다. 

마야인은 세계 최초로 0의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했으며, 태양력에서의 1년이 365.2420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최첨단 기술로 계산한 1년은 365.2422일인데, 오차가 아주 적다. 

마야 문명이 수학, 천문학을 고도로 계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점은 마야 문명의 정수가 모두 담겨 있는 결정체인 쿠쿨칸의 신전 '엘 카스티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엘 카스티요는 마야 뱀의 신 '쿠쿨칸'을 모시는 신전으로, 30m에 달하는 아흔한 개의 돌계단을 4면에 두었다.

돌들의 합을 계산하면 총 364계단이며, 정상의 재단 하나를 더하면 총 365개.

즉, 마야인들은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1년 중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의 오후가 되면 피라미드 북쪽에 위치한 뱀 머리에 그림자가 생기는데, 이 모습은 마치 뱀이 꿈틀 거리며 사원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마야인들은 뱀이 만물을 재생시키고 풍요로움을 준다고 믿어 이때 씨앗을 뿌리고, 수확했는데 이것 또한 마야인들이 해의 각도와 건물의 배치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엘 카스티요를 설계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마야 문명은 수학과 천문학에서 기이할 정도로 월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이러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는지 밝혀진 것이 없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생기는데, 이렇게 철저히 계산해서 만든 거대한 도시를 마야인들은 왜 도시를 버리고 떠나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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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의 멸망


마야 문명의 멸망 원인은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스페인과의 전쟁이 멸망 원인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마야 문명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다수의 도시가 폐허가 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있던 소도시를 스페인 군대가 점령했고, 이때 남아있던 기록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때문에 대도시를 이루며 살던 마야인들이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인데, 이에 대해 학자들은 전염병과 외부 침입설, 화산 폭발 등 다양한 이론들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세계 각국 연구진들이 하나의 이유를 유력한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바로 가뭄이다.

한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마야 문명의 고전기에 해당하는 800~1000년 당시 강유량이 평소보다 41~54%, 심지어 70%까지도 감소한 것을 밝혀냈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기후변화는 농경사회였던 마야 문명에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연구 결과가 또 하나 발표되었는데, 마야 문명의 멸망 원인이 '수은'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호주와 미국, 영국의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를 통해 마야 문명 시기에 대규모 도시였던 다수 지역에서 수은 오염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연구진들은 마야 문명 시기에 도시였던 특정 지역 10곳을 뽑아 분석했고, 그 결과 7곳에서 수은이 현대의 환경 기준치를 넘어선 수준으로 검출됐다는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수은에 대한 농업 환경 기준치를 0.05ppm으로 잡고 있는데, 마야 문명의 대도시 티칼에서는 무려 17.16ppm이 확인됐다고 한다. 

때문에 연구진은 "나야 도시의 토양 등 퇴적물에 묻힌 수은은 수 세기 동안 마야인들이 수은을 사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마야인들은 왜 이렇게 많은 수은을 사용했을까?

마야인들은 건물이나 도자기 등 생활용품을 빨간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사용한 페인트가 진사(cinnabar)였다.

진사의 주성분은 황화수은으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중금속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을 마야인들은 벽과 생활용품 군데군데 진사를 발랐고, 진사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 결국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켰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 것이다. 

연구진들은 마야인들이 수은 중독에 걸렸을 것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지만 무덤에 묻힌 마야인의 치아나 뼈에서 수은이 검출된 사례가 있어 마야 문명 멸망 원인이 수은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글을 마치며


천문학과 수학이 발달로 수준 높고 찬란한 문명을 일궜던 마야 문명.

하지만 대항해 시대,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마야의 문명을 발견했을 때는 찬란했던 옛 제국은 열대 우림 속 흔적으로만 남아있었고, 

정복자들이 남아있던 두루마리와 책들까지 모조리 태워버리면서 안 그래도 미스터리한 마야의 문명은, 지금까지도 세계 문명 중 가장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문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때문에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들의 가치를 알기 위해 고고학자들의 연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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