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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역사 &미스테리

외계인이 만들었나?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의 비밀

by 파베누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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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섬 모아이석상
이스타섬 모아이석상

 

고대 문명의 미스터리는 대부분 '어떻게 만들었을까?'에서 시작된다.

현대의 기술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몇천 년 앞서 만들었기 때문인데, 태평양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신비의 섬 '이스터섬'역시 이런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실제로 어떤 인류가 이렇게 자그맣고 외딴섬에 찾아와 살기 시작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현재까지도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외계인 문명이 아니겠냐는 의심도 받았었다.

그런데 사실 이스터섬에는 더 큰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바로 해안가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 개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이스터섬에 세워진 모아이 석상은 최소 3.5m에서 최대 21m까지 다양한 크기다.

이렇게 거대한 석상을 서기 1200년부터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가장 의문인 점은 '거대한 크기의 석상을 대체 어떻게 해안가까지 옮겼을까?'이다.

게다가 이스터섬 문명이 무너진 원인에는 끔찍한 식인 문화가 있었다는 비극적인 가설도 있기 때문에 미스터리함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스터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들은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어떻게 옮실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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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진짜 이름 '라파누이'


'라파누이' 큰 섬이라는 뜻으로, 이스터섬이라는 명칭이 생기기 전 원주민들이 섬을 부르던 고유 명칭이다.

라파누이는 서울 면접의 1/4, 제주도 면적의 1/10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인데 그나마 가까운 나라인 칠레와도 약 3,500km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딴곳에 있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외딴섬'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비의 섬 라파누이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722년, 네덜란드 사령관 야코프 로헤베인을 통해서였다.

야코프와 그의 선원들은 남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는데 아주 작은 섬에 거인들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에 조심스레 섬에 정박했고,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나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해 보이는 아주 작은 섬에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정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만의 문명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모아이 석상'이다.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한 석상들은 해안가를 따라 수백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개수가 무려 887개였다. 이 석상들의 크기는 평균 4m였는데 그중에서는 높이 21m의 초대형 모아이 석상도 존재했다.

이런 광경을 본 야코프는 대체 원주민들이 석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또 어떻게 옮겼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며칠간 섬에 머물며 진실을 파헤쳐 보지만 모아이 석상의 미스터리를 아는 원주민도,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야코프는 부활절에 발견했다는 의미로 '이스터섬'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자신이 본 미스터리한 광경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이스터섬의 존재와 섬의 미스터리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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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최초 인류


이스터섬의 미스터리는 원주민들로부터 시작된다. 이스터섬에 첫발을 디딘 사람이 누구인지, 또 언제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스터섬의 신화에 따라 초대 왕이 '호투 마투아'라는 것만 알 수 있다. 

이들이 최초로 이스터섬에 정착한 시기는 서기 12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상한 점이 있다.

유럽인들이 이스터섬을 발견했을 땐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황량해 보였다고 했는데 이들은 왜 이곳에 정착한 걸까?

사실 이 부분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들이 처음 이스터섬에 정착했을 때의 환경은 '열대의 낙원'이었을 것이라 한다.

화산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스터섬은 화산재 덕에 토지가 비옥했고, 야자수가 무려 수천 그루 이상 자라서 울창한 울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주민들은 이곳에 정착해 사회를 만들 수 있었고, 전성기엔 인구가 1만 7천 명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의문스러운 점이 남아있다. 

모아이 석상의 이동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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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석상의 이동 방법


모아이 석상은 20톤에서 무거운 것은 최대 90톤에 달하는 아주 거대한 석상이다.

게다가 개수도 887개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때문에 이런 석상들을 사람의 힘만으로는 섬 중앙의 채석장에서 해안가까지 옮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였다.

따라서 학자들은 나무로 굴림대를 만들어 석상을 옮겼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더불어 이스터섬의 수많은 야자수가 사라진 이유도 석상을 옮기기 위해 과하게 사용됐기 때문이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많은 반박이 이어졌다.

이스트섬 숲의 주를 이뤘던 야자수는 겉은 단단하지만, 속이 물러 석상을 올려놓으면 그대로 부러지기 때문에 굴림대로 사용하지 적합하지 않고, 이스터섬에는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 석상을 눕혀놓은 채로 썰매를 끌 듯 이동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모아이 석상 이동에 관한 새로운 가설이 등장한다.

모아이 석상이 걸어서 이동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주장한 연구팀은 원주민들의 언어인 '네케네케'에서 힌트를 얻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네케네케'는 다리 없이 걷기라는 뜻으로 뒤뚱뒤뚱하며 걷는 모습을 의미하는데, 연구진들은 이 단어에서 착안해 5톤짜리 모아이 석상 복제품에 밧줄을 묶어 세운 후 양쪽과 뒤쪽에서 번갈아 가며 밧줄을 당겼고 모아이 석상이 실제로 걷는듯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18명의 인원으로 약 5톤짜리 석상을 40분 만에 100m 옮기는 데 성공했고, 이에 따라 2주면 해안가까지 석상을 옮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가설도 곧 반박에 부딪힌다.

5톤짜리 석상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90톤에 달하는 석상은 세우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석상의 밑바닥 부위가 저마다 다른 것도 반박의 근거가 되었다. 

게다가 2015년에는 땅속 깊이 박혀있던 10m 길이의 모아이 석상이 발견되면서 이 가설도 힘들 잃고 만다.

때문에 모아이 석상 이동 방법에 대한 논쟁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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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이스터섬


신비의 이스터섬에는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남았다. 문명의 최대 절정기, 1만 7천여 명의 인구에 달했던 이스터섬은 왜 세상에 알려진 무렵 3천 명의 인구만 남아 있었던 걸까?

전문가들은 이스터섬의 몰락이 인구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었다. 인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숲을 벌목해 밭과 카누를 만들며 나무들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숲이 파괴되자 이스터섬은 사막화가 진행되었고, 결국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숲이 사라지면서 원주민들은 야생동물과 열매를 얻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에는 바다로 나갈 배도 만들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립된 섬에서 먹을 것을 구할 방법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그 결과 이스터섬에는 끔찍한 재앙이 찾아오게 된다. 자원이 부족해진 이들은 다른 부족의 자원을 뺏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식인 문화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원주민들의 언어에는 '오늘 점심은 네 아들로 정했다'와 같은 섬뜩한 관용어구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결국 이스터섬의 문명은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에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스터섬의 문명이 몰락한 원인이 무분별한 벌채와 내전, 풍습이 아닌 유럽인들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야코프 로헤베인의 방문 이후, 이스터섬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자 유럽인들은 섬을 찾아왔고, 그때 이스터섬에 천연두와 매독 같은 전염병이 퍼지게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던 원주민들은 꼼짝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860년대, 유럽인들과 페루인들이 원주민들을 노예로 끌고 가 이스터섬의 인구는 급감했고 1877년, 고작 111명의 원주민만이 이스터섬에 남게 되면서 찬란했던 이스터섬의 문명이 무너지게 되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가설일 뿐, 여전히 이스터섬의 멸망 원인으로는 원주민들이 스스로 자원을 고갈시킨 탓에 무너졌다는 주장과 외부인이 침입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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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외딴섬 '이스터섬'


이스터섬은 1888년 칠레령이 되었다. 칠레의 통치 이후 이스터섬은 이전에 비하면 인구수도 크게 늘었고 자연도 많이 복원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관광산업이 발달하면서 원주민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급기야 이스터섬 인구수의 절반은 칠레인이 차지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은 칠레 정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시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이스터섬에 산불이 발생해 수백 개의 모아이 석상이 훼손됐는데 그중 일부는 복구가 불가능한 정도인 탓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명을 만들었지만 명확한 이유도 알 수 없이 무너져 버린 이스터섬의 문명.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금도 연구는 진행 중이고 다양한 가설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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