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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조선시대 월급 총정리 _ 조선시대 궁녀 월급 980?!

by 파베누 2022.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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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월급이 궁금하다.

가끔 페북이나 인스타 보고 있으면
‘의외로 돈 많이 버는 직업! 하면서
아이스크림 맛 평가사, 병아리 감별사 이런 거 나오는데
요즘은 저런 일자리는커녕 평범한 일자리 하나도 찾기 힘들 상황이라
저런 글을 봐도 마냥 재밌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니 공무원이니
페이가 얼마냐가 중요하긴 하고...
과연 우리 조상님들. 조선시대에도 이런 고민들을 했을까?
그렇다면 조선시대 직업들은 얼마나 벌었을까


조선시대 월급 총정리 _ 조선시대 궁녀 월급 980?!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요즘은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는커녕
그냥 알바 하나도 찾기 힘들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공무원으로 몰리고 경쟁률은 박터지고 ㄷ ㄷ
조선시대에도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공무원의 경쟁률이 엄청났다고 한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 좋지!

이런 느낌이 아닌


진짜 진짜 공무원이 최고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여성공무원 궁녀는
기본적으로 처녀만이 될 수 있었으며 금기시되는 행동들이 많았다.
지켜야 할 규율들이 많았기에 다소 힘든 공무원이었다고 볼 수 있음에도
지망하는 여인들이 많았는데
궁녀들이 받는 월급을 알아보면 답이 나온다


1925년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월급이 가장 많은 궁녀는
왕이 머무르는 내전에서 일하는 지밀 궁녀였는데
지밀 궁녀의 월급은 가장 적게 받은 사람이 50원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196원 있었다.

196원을 받은 궁녀는 제조상궁이라고 불리는 궁녀로
궁녀 중 가장 선임인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금액을 현대 가치에 맞게 치환을 해보자
수많은 학자분들의 연구에 의하면 1920년대의 1원은
지금의 약 5만 원의 가치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1원이 5만 원. 결론은 무려 5만 배!

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제조상궁의 월급은 무려 980만 원이 된다.


더 생각을 해보면 궁녀들을 궁에서 먹고 자고 모든 것이 풀 제공되니
리얼하게 순수익이었다.

다만 지밀 궁녀 이외의 궁녀들의 월급은
40~80원 정도, 즉 현대 가치로는 약 200만 원 ~40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고 하는데
궁녀들은 매일 일하는 것이 아닌 하루 일하고 하루 쉬고 이런 식의
2교대 근무라 일반 궁녀들 역시 상당한 고연봉자라고 볼 수 있다.


궁녀들이 이 정도 받는데
양반 사대부들은 얼마나 많이 받았으려나?

기록에 따르면 녹봉이 가장 풍족하게 지급될 때
정 1품의 연봉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2억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첩이나 노비 등등 많이 들 수 있던 것


예상보다 궁녀들이 돈을 많이 받은 걸 알 수 있었는데
그럼 이 조선시대 공무원이었던 궁녀처럼
또 다른 공무원이었던 군인들의 월급은?

우선 군대 제일의 문제가 되는 게 복무기간 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조선시대 군인의 복무기간은 넘사였다.
기본적으로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양인 남자는 모두 군역의 의무가 부가되었는데
복무기간이 무려 44년이었다.


물론 지금같이 복무 기간 내내 군대에서 생활하지는 않았고
1년 중 2개월~6개월 정도만 근무했다지만 2개월이라고 쳐도 88개월.
거의 7년이 넘는 복무기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오랫동안 군생활을 하는 군인들의 월급은 얼마였을까

조선 전기에는 군역에 따른 월급은 단돈 0원이었다.
나라에서는 월급 자체를 아예 주기 않았다는 것인데
군역이라는 게 백성들이 나라에 내야 할 세금 같은 것이었다 보니
월급을 주는 게 말이 안 된다. 이런 이유였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드디어 월급을 받는 병사들이 생기는데
바로 조선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난리가 났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성을 지키는 훈련도감을 설치했는데
이 훈련도감의 병사들은 모두 직업군인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직업이 군인인데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나라 자체에 재정 문제가 시급 했다 보니
군인들에게도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했던 것.

월급을 주지 못하자 투잡을 허용해 주면서
조선 후기 군인들은 투잡까지 뛰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고 한다.
직업이 군인인데.. 밤에는 대리 뛰고.. 이런 느낌인가 ㅜ ㅜ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 대우는.. 눈물이 핑 ㅜ


이런 군인과는 정반대로
현재 인식보다 훨씬 돈을 더 많이 벌었던 직업도 있는데


바로 똥장수였다.


조선 전기 15세기에는 한양의 인구가 10만 명이었다가
18세기가 되며 무려 40만 명까지 불어났는데
이러다 보니 매우 중요했던 것이 바로 배설물 처리였다.

이 배설물이 얼마나 문제였냐 하면
한양 곳곳에 사람과 동물의 분뇨로 악취가 진동한 것은 물론
식수로 써야 되는 물에 똥이 흘러들어 가서
물이 짤 지경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등장했던 직업이 바로 민간인 배설물 처리업자
일명 똥장수였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은 물론이고
말, 소, 개 등 동물들의 똥도 가리지 않고 주워다가 팔았는데
이 똥을 누가 사가냐 -
바로 한양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농가였다.
그럼 이 똥을 팔아서 번 돈은 얼마였을까

똥장수의 연봉은 놀랍게도 6000전이었다.

10 전이 1냥이니 연수입이 600냥이었던 것이고

18세기 후반에 600냥은

한양의 괜찮은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년 똥 모아다가 팔아서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는 것 ㅋㅋ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상상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게 가능했네 했어



이렇게 지금과는 다르게 돈 잘 버는 직업이 있는 반면
돈을 많이 벌지 못했던 직업도 있지 않을까

오늘날에는 공부천재들만 할 수 있는 “자격" 이 주어지는 직업

바로 의사

조선시대엔 의원이라 불렸던 사람들이다.
이 의원들은 국가에 소속된 의원과 민간의원으로 나뉘었다고 하는데
오늘은 국가에 소속된 의원이 아닌
실제 백성들이 사용했던 민간의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의사 하면 ' 최고의 지식인, 성스럽고 숭고한 직업 ' 과 같은
긍정적이고 좋게 평가가 되고 있는 반면

조선시대엔 이 의사라는 직업을 그리 좋지는 않..
그냥 관직 못할 거면 이거라도 해!라는 식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몰락한 양반들이 배워서 하는 경우가 더러 있던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 의원들은 얼마를 받고 치료를 해줬을까

당시 조선시대는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이 활성화되었다 보니
쌀부터 시작해서 면포, 비단 등등 시장에서 교환 가치가 있는 물건을
거의 다 치료비로 낼 수 있었는데
지급방식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바로 치료를 받고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병이 낫고 환자가 여유가 생기면 그때 줬다는 것..???
그 말인 즉 병이 안 나으면 돈을 안 줘도 됐다는 것인데….

이러다 보니 조선시대 의사들은 지금 의사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 마지막으로 어느 시대나 잘 버는 직업들을 알아볼까

먼저
조선시대 판 외교관 겸 통역관 _ 역관이다.


지금은 정규 교육 과정에도 외국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할 수준이었다.
우선 번역이라고 하는 일 자체가 기술직이라고 생각해서
양반들은 공부를 하지 않았고 평민들은 교육의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으니 외국어를 배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외국어로 벌어먹고 살던 직업이 있었는데
그 직업이 바로 역관이다.


조선시대 훨씬 더 전부터 다른 나라와의 교류는 꽤 있었는데
그럴 때 필요한 사람이 역관들이 었던 것이다
결국 나랏일을 할 때 꼭 필요했던 인물들이었던 건데
그렇다면 이 역관들은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당시 사신단이 한 번 외국 출장을 나가면
6개월 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렸는데
이때 조정에서는 출장비 대신 인삼을 지급했다고 한다.
외국에 가서 직접 팔아서 쓰라는 것인데
이 출장비 명목으로 1인 당 지급했던 인삼이 무려 80근이었다.
당시 인삼 80근은 자그마치 은 2000냥 정도였다고 하는데
은 1냥이 쌀 2석을 살 수 있었는데
현재 가치로 환산해보면 약 10억 정도라고 한다.
1년 동안 쓸 생활비랑 이것저것 들어가지만
그런 계산 다 빼도 미친 연봉임에는 틀림없다.
근데 또 여기서 역관들은 이 돈으로 해외 물건들을 사서 국내에 들어와 팔고 했는데
마진이 2-3배 정도 남았다고 하니 그 수입 역시 대단했다.

흔히 갑부라고 하는 불리는 집안은 거의 역관 출신이었고
그러다 보니 역관들이 이런 꿀 직업을 자식에게 시키면서
대대로 역관 출신 집안이 생기고 이후엔 유명한 역관 가문 몇 개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조선판 부동산 중개업자 _ 집주름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한양은 상업의 발전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모두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의 서울과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인데,
그때부터 집주름들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부동산 중개료로 받은 돈이
판매한 집 가격의 무려 10% 였다고 하는데
1억짜리 집 팔면 1000만 원을 버는 것이었다. ㄷ ㄷ

실제로 심노숭의 '자저실기'에 의하면 홍선양 이라고 하는 사람이
지금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가장 비싼 집을 판매했는데
그 집 가격이 약 7천 냥 _ 이때 집주름이 받아간 돈이 700냥이었다.

현재 가치로 바꿔보면 부려 3500만 원.
부동산 복비로만 3500만 원…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 돈 가장 많이 버는
집주름이가 조선 최고 연봉자라는 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결론은 진짜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동산이 레전드! 끝


조선시대 월급 총정리 _ 조선시대 궁녀 월급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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