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고려 말 시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군주.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뒤 미쳐버리게 되고
믿을 수 없는 짓들을 해버린
최악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군주
공민왕
오늘은 공민왕의 이야기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
원나라가 세상을 지배하고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즉, 고려 왕실이 원나라 황실의 사위 집안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민왕 또한 원나라에 볼모로 가있던 시기에
20살의 나이로 원의 공주인 '노국대장공주'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사실 그 동안 고려의 왕비가 원나라 공주들은
남편인 고려 왕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대부분의 왕비들은 고려를 감시하는 원의 스파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민왕은 달랐다.
다른 왕들과 달리 그 흔한 후궁 한 명 들이지도 않았고
오직 노국공주만을 사랑했다.
이러한 그들의 사랑은 공민왕이 고려왕이 된 뒤부터 확실히 보여주게 되는데
1351년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타락해진 원의 모습을 보고 개혁을 꿈꾸며
원나라의 간섭으로 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원과 인연을 끊고
혼란스러운 고려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때 노국공주는 이러한 공민왕의 개혁정책에 반대하기는커녕
"저는 고려에 시집왔으니 고려인이며
마땅히 고려의 풍속을 따르겠습니다. "
이렇게 성품이 어질었던 그녀는
공민왕의 반원정책들을 지지하며
원의 스파이가 아닌 공민왕의 반려자로 살아가게 된다
원나라 공주 신분이었지만 원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임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공민왕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공민왕에게 노국공주는 정치적 동반자 그 이상이었고
평생을 의지할 그의 전부였다.
이렇게 둘이 아주 알콩달콩하게 깨알 쏟아지듯 행복하게 살게 된다.
다만 둘 사이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혼 후 10년간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 두 번째 왕비를 받아들여달라 '
간곡히 부탁하게 된다.
진짜 다른 여자는 싫어서 무시만 하던 공민왕이
신하들의 열성에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왕비를 들이긴 했지만
정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지나 결혼 15년 만에 드디어
노국공주가 임신을 하게 된다.
왕실의 후사를 볼 생각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던 공민왕.
그러나 좋았던 것도 잠시
이제부터 파국이 휘몰아치게 된다.
'노국공주'의 죽음에 충격받은 공민왕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사랑하던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아이와 함께 숨을 거두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잊지 못하여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는
그 그림과 마주 보며 매일 식사를 하기도 하고
그녀가 살아있는 듯이 대화를 대화는 나누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슬피 울기도 하고
3년 동안은 아예 고기를 먹지도 않았다.
아마 이때부터 고려의 운명은 끝이 난 것이었는데
개혁 의지는커녕 정사도 돌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폐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정말 정신병에 걸려
아주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
먼저 공민왕은 모든 전권을 승려 '신돈' 에게 맡기고
노국공주의 영전 건설에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게 된다.
이때 거의 민심과 국고가 탈탈 털렸다고 한다.
여기서 그 치치 않고,
성적인 측면에서 정말 방탄한 삶을 살게 되는데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 젊고 용모가 아주 빼어난 미소년들을 뽑아
신설한 자제위 에 소속되게 한 뒤
이 어리고 아름다운 소년들에게 시중을 들게 하기도 했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이들을 시켜서 본인의 후궁들을 강제로 범하게 했다는 것이다.
공민왕은 이를 감상하며 즐겼다고 한다.
공민왕 또한 그들과 동성애를 벌리기도 하고
여자 옷을 입기도 하고 아주 단단히 파격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그 미소년들도 많은 재물과 군세를 누리며
고려 왕실을 아주 방탕하게 만들었고
이에 신하들은 엄청난 비난들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때 등장하는 자제위의 미소년
'홍륜'
후사가 없었던 공민왕은
자제위 와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속여 후계자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홍륜은 '익비 한 씨'와 관계를 갖게 되었고,
처음에는 공민왕의 명령에 따른 관계였지만
이후엔 명령 없이도 왕의 눈을 피해
몰래 익비와 정을 통했다.
그러다 결국 익비가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이는
내시 '최만생'
최만생은 곧바로 공민왕에게 달려서
익비가 홍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만취 상태였던 공민왕이 답하길
"홍륜을 포함하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죽여야겠구나."
그 아이를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홍륜과 익비의 은밀한 관계를 아는 모든 이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최만생을 다시 홍륜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게 된다.
그렇게 홍륜과 동료들은 이렇게 죽을 바에 왕을 배반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374년
그들은 계획대로 공민왕의 처소로 난입하여
술에 취해 잠든 공민왕을 수차레 난도질을 했다.
공민왕의 뇌수가 튀어 병풍에 붙을 정도로
참혹하게 살해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처럼 공민왕은 45세의 나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고
최만생과 홍륜을 비롯해 시해에 가담한 무리들 모두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다.
역사의 진실은..
사실 학계에선 이러한 공민왕의 믿을 수 없는 행동들은
과장과 왜곡이 많다고 보고 있다.
고려 말기의 기록들은 이성계의 반란으로 세워진 조선을
미화하기 위해 쓰인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사' 자체가 조선 건국 이후에 쓰인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정말 승자의 편인 것일까
왕의 자리에 있던 23년 동안 고려를 위해 과감한 개혁정치를 펼치고
사랑하는 아내를 평생 그리워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공민왕
그는 아내 노국공주를 떠나보낸 뒤 죽어서도 서로의 영혼이 통해
노국공주와 계속해서 사랑하길 희망했다.
그렇게 고려 왕조 다른 왕들과는 달리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죽어서도 나란히 묻히게 된다.
미치도록 사랑한 노국공주가 죽은 후 공민왕이 벌인 충격적인 일들
: 벼락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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