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6년 내가 12살 부산 할머니 댁에서 겪은 일이다.
당시 할머니 댁은 부산 황령산 자락에 있었는데 조그만 마당이 있던 양옥집이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집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 있었다.
대문 밑에 물이 차오르면 절대로 아이들만 집에 두지 말 것.
이 금기를 만든 사람은 이웃에 살던 남천동 할머니.
남천동 할머니는 무속인은 아니지만 신기가 있었던 분이다.
한 번은 할아버지가 공사현장에 출근하려는데,
"OO할아버지, 오늘은 절대 일 나가지 마세요. 큰일 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거다.
그런데 그날 공사장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우리 아빠가 대구로 출장 가는 날인데, 급하게 달려온 남청동 할머니가
아빠에게 오늘은 절대로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지하철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로 알려진 그 사건이었다.
이렇게 미래를 매번 맞혔던 남천동 할머니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할매 말을 신뢰하게 되었다.
때는 추석 연휴 첫날..
할머니 댁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그중 아이들은 12살의 나, 그리고 8살 사촌동생 준우 이렇게 딱 2명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나와 준우는 함께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음식 준비를 모두 마친 어른들은 다 함께 목욕탕을 간다며 집을 나섰고,
집에는 준우와 나. 단 둘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당이 조용해졌다.
그 어디에도 동생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고요한 마당.
혹시 준우가 혼자 밖으로 나갔나 하는 생각에 대문 밖을 나섰다.
그때, 저 멀리 골목 끝에 누군가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걸 봤다.
동생인가 싶어 얼른 쫓아가 봤는데
검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터벅터벅 걷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 여자아이 손을 보니 줄을 쥐고는 무언가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털이 덥수룩한 삽살개 같은 동물이었다.
그런데 그 동물이 쓸려간 자리엔 검붉은 흔적이 묻어나 있었다.
'뭐지? 왜 저렇게 끌고 가는 거지?'
나는 호기심에 그 여자아이를 따라갔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그 여자애 앞에 꽃상여가 놓여 있었다.
꽃상여 앞에 멈춰 선 아이는 갑자기 뒤를 휙 돌아보더니,
히낄낄낄낄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고 굳어버렸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여자의 수상한 행동은 계속됐다.
계속 웃으면서 끌고 가던 동물을 꽃상여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 짐승은 들어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고, 여자아이는 목을 쥐고는 억지로 밀어 넣었다.
끅.. 끅
목이 졸려 숨이 막힌 그 동물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동물의 얼굴을 자세히 봤더니 사라진 사촌동생 준우였다.
으윽.. 으윽
꽃상여에 들어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동생을 보자 나는 소리쳤다.
"안돼!!!! 안돼!!!!!!!"
그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마루에 누워 있었다.
'아.. 꿈이었구나..'
그렇게 안도하며 한 숨 돌리려는데,
바로 옆에서 준우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것이다.
숨을 못 쉬는 듯 몸을 비트는 모습이 꿈에서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어른들을 다급히 불렀지만, 집엔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준우를 일으켜서 집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비를 맞으며 동생을 끌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문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대문 밖으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대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준우가 구토를 했고, 그제야 막힌 숨이 트인 듯 연신 기침을 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준우를 일으켰는데 그때, 어른들이 돌아오다가 우리를 보고 놀라 뛰어오셨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남천동 할머니.
"내 뭐라 했나? 애들만 두자 말라했지?!"
남천동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대문 바로 밑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대문 밑에 물이 차오를 때 절대로 아이들만 집에 두지 말 것.
순간 어른들은 '금기가 깨졌구나' 하는 생각에 사색이 되었다.
준우 엄마는 어쩌면 좋냐며 울고, 어른들도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데
남천동 할머니는 갑자기 집 위를 쳐다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집에 이불보 천 같은 거 있지?
어서 가서 챙겨 와. 지금 시간이 없어!"
우리 엄마가 부랴부랴 무명천을 챙겨 오자 남천동 할머니가 다시 소리쳤다.
"빨리 이 천으로 아이들을 가리고 날 따라와"
어른들은 우리를 천으로 꽁꽁 싸매고
남천동 할머니를 따라 다급히 뛰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남천동 할머니의 방.
할매 방은 상을 차리고 기도하는 신당과 같은 곳이었다.
방에 도착하자 우리에게 싸맸던 천을 급하게 풀러 냈는데
당시 어렸던 우리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남천동 할머니는 우리 앞으로 다가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희들, 할머니가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는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혹시라도 밖에서 누가 불러도 절대 절대로 대답하면 안 돼.
그리고 OO아, 동생은 네가 지켜야 해.. 알겠지?"
할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방 밖으로 나갔고,
밖에 있던 어른들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
"일단 그것의 눈을 속여 애들을 방에 숨겼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애들이 어디 있는지 절대 말하면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내 말 명심해"
남천동 할머니와 어른들은 쑥떡쑥떡 하더니 사라졌고 다시 고요해졌다.
그 와중에 힘없이 늘어진 동생은 엄마를 찾으며 보채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서 누나랑 자야 해"
나는 칭얼거리는 준우를 간신히 달래고 나서야 겨우 같이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밖에서 들리는 희미한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준우야~ 준우야 어딨니?
빨리 엄마한테 와야지"
그 목소리는 준우 엄마의 목소리였다.
옆에서 자고 있던 준우도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준우.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냐면 어른들은 분명 우리가 할머니 방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방에 들어오지는 않고, 계속해서 찾는 건 뭔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계속 동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가려는 동생을 막아섰지만 실랑이를 하다가 동생이 나를 뿌리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안돼!!!! "
동생을 다시 잡았지만, 갑자기 번개가 쳤고 그 순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번쩍이는 창문 너머 서 있는 검은 그림자.
"여기 있었네? 낄낄낄낄"
꿈속에서 들었던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준우야 나랑 함께 가야지!
준우야 어서 나와~ "
무서워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두려움에 벌벌 떨던 그때
"꺄아아악~~!!!!"
갑자기 귀를 찢을 듯 한 여자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그 순간 문이 활약 열렸다.
"얘들아 괜찮니?
어린것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 OO이가 동생을 살린 거야"
남천동 할머니였다.
그런데 남천동 할머니는 어떻게 귀신이 나타난 걸 알았을까.
나는 어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와 동생이 대문 앞에 쓰러졌을 때 남천동 할머니는
지붕 위를 봤다가 춤을 추며 낄낄 대는 여자귀신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아이들이 문간에서 넘어졌을 때, 그 위에서 이 잡것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귀신이 아이들을 보지 못하게 서둘러 천을 둘러 안전한 신당으로 대피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남천동 할머니는 춤추는 귀신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밤새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새벽에 준우 엄마가 사색이 되어 남천동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어떡해요, 저 아이들이 있는 곳을 말해버렸어요"
그리곤 벌벌 떨면서 남천동 할머니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데,
꿈속에서 준우 아빠가 빙긋 웃으면서
"아이들 데리고 놀이공원이나 갈까? " 묻더라는 거다.
그래서 준우 엄마도 모르게
"그래, 내가 데리고 올게. 얘가 어디 있었지? 아 맞다. 당집에 있었지"
그 순간 서글서글 웃던 준우 아빠의 입이 기괴하게 찢어지더니
"당집이다 , 히히히히히 당집이네 당집!!!"
꿈속에서 준우 아빠인 줄 알았던 존재가 사실은 여자 귀신이었던 것이다.
준우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남천동 할머니는 그 길로 바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 귀신이 창문 앞에 딱 붙어 서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고 했다.
남천동 할머니는 가지고 온 부적을 불태웠다.
반항하던 귀신은 부적이 다 타버리는 순간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사촌동생 준우를 집요하게 찾아다니던 여자귀신은
왜 그토록 동생을 데려가려고 했던 걸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릴 적 우리 집에서 작은 아빠랑 고모 두 분이 같이 폐렴이 걸렸었다고 한다.
집안 사정 때문에 한 명만 살릴 수밖에 없어 아들인 작은 아빠를 치료했고, 고모는 세상을 떠났다.
고모가 돌아가신 나이가 8살이었고, 가족들끼리는 아무래도 고모가 한이 되어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이후 금기의 의미를 좀 알게 되었는데,
대문에 물이 차오를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릴 때면 귀신이 물살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출처 : 심야괴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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