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7월 20일. 인류의 위대한 업적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그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지켜봤다.
그리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은 말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인간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다)
그의 한마디는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의 사건은
인류 역사 중 가장 유명한 음모론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국 정부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달 착륙 상황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20세기 영화계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달 착륙 장면을 연출했다는 구체적인 음모론도 있는데
의혹들은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대체 왜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 착륙 음모론이 존재하는 걸까?
이번 글은 달 착륙 음모론에 관한 반박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달 착륙 음모론과 반박
1. 진공 상태의 달에서 어떻게 깃발이 펄럭일 수 있는가?
달착륙 음모론은
성조기가 달의 표면에 꽂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깃발이 달에 꽂히는 순간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었기 때문인데,
'촬영 세트장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깃발을 끼운 기둥은 단순한 일자 모양이 아닌
윗부분에도 프레임이 있는 'ㄱ'자 모양의 기둥이었다.
미국이 소련보다 먼저 달에 갔는데,
깃발이 축 처져 있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아
기둥을 특수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펼쳐진 성조기는 달 표면에 흔들림이 생겼고
이 모습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NASA의 로켓 과학자 '제임스 오버그'는
"깃대에 매달린 성조기는 우주 비행사와 부딪힌 이후
앞뒤로 흔들렸다" 고 말했다.
지구에서는 공기의 저항 때문에
흔들림이 빠르게 사라지지만
지구보다 중력이 6분의 1 정도로 작고
공기 저항이 없는 달에서는 흔들림이 지속되어
바람이 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인류가 달에 깃발에 꽂는 일이 처음이라 벌어진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깃발을 달 표면에 살짝 꽂아둔 탓에
달 착륙선이 이륙하면서 발생한
가스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깃발이 넘어져 버렸다.
만약,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 모습을
미국이 연출한 것이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2. 달 착륙 사진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
스튜디오 촬영 의혹을 이유로 또 하나가 있다.
사진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별이 찍혔다면,
오히려 조작 의심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에서 활동할 때
태양광이 달을 아주 밝게 비추고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카메라 노출을 과하게 설정하여 찍게 되면
화면 속 피사체가 모두 하얗게 찍혀버린다.
별은 찍힐 수 있어도 우주인들이나 달 표면이
전부 하얗게 찍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폴로 우주인들은 노출값을
우주복에 맞춰 설정했고,
그 결과 사진에 별이 찍히지 않은 것이다.
3. 달의 표면에서 찍힌 발자국이 너무나 선명하다.
또 다른 의혹은 발자국이 생겼다는 것이다.
해변이나 사막처럼 마른 모래에서 걸으면,
밟아도 발자국이 바로 무너져 버린다.
'습기가 없는 달에서도 발자국이 남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과학적으로 반증이 된 부분이다.
달의 먼지인 '레골리스' 입자는 갈고리 같은 형태로
움직임이 발생하면 서로 불 잡아매는 성질 때문에
수분이 없더라도 발자국 모양을 보존할 수 있고,
달에는 대기가 없으니, 큰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몇백 년이 지나도 우주인들의 발자국은
남아있을 것이라 한다.
4. 달에 착륙하는 모습은 누가 찍었는가?
아폴로 11호가 착륙하는 영상을 보면,
마치 촬영팀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촬영한 것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사진은 착륙선 다리에 달린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달 표면 착륙을 위해 입구가 열리면서
카메라도 나온 것이다.
때문에 사람이 내리지 않아도 그들의 착륙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5. 발사대가 없는 달에서 어떻게 지구로 돌아온 걸까?
아폴로 11호에는 닐 암스트롱 이외에
2명의 우주인이 더 있었다.
[영화] 토이 스토리 '버즈'의 실제 모델인
'버즈 올드린'과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다
그런데 달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두 명뿐이었고,
마이클 콜린스는 우주까지 갔음에도
우주선에서 내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달 탐사용 우주선의 사령선은
달에 착륙하지 않고,
달 주위를 돌면서 착륙선의 달 탐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령선에 마이클 콜린스가 타고 있었고
지구의 송신이 닿지 않는 달의 뒷면까지
혼자 돌고 있던 것이다.
[달 주위를 사령선이 돌고 착륙선이 점프하여
사령선과 합체 한 뒤에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
당시 계획이었는데,
상상만으로도 너무 어려운 기술이라
음모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착륙선은 달 궤도로 올라갈 연료만 있으면 됐기 때문에
지구처럼 거창한 발사대 없이 이륙할 수 있었고
기다리고 있던 사령선과 도킹에 성공,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6. 왜 미국은 아폴로 11호 이후 달에 가지 않았나?
간단히 이야기하면,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총 6번이었다.
아폴로 11호가 최초의 달 착륙 유인 우주선으로
유명해진 탓에 그 이후의 유인 달 탐사 우주선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17호까지 있었는데
그중 13호가 고장으로 인해 돌아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섯 번을 더 다녀왔다.
하지만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데,
더 이상 막대한 예산을 투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당시 예산으로 250억 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한화 약 100조 원이 넘는 금액으로
막대한 투자 대비 이윤이라고 할만한
성과가 크지 않아 굳이 아폴로 프로젝트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아폴로 음모론이 거짓인 결정적 이유
여전히 야기되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음모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음모론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이 달 표면에서 가져온 월석은
구소련이 채취한 월석과
같은 성분으로 분석되었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 설치했던
레이저 반사경은 현재까지도
달과 지구상의 거리 측정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그 증거이다.
그리고 가장 큰 정황상 증거는
미국과 함께 우주 기술 경쟁을 했던 구소련이
아폴로 11호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폴로 프로젝트가 구소련과의
우주 기술 경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만약 아폴로 11호가 연출된 것이라면
구소련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위대한 희망을 준 달 탐사.
그럼에도 막대한 투자 비용 대비 , 큰 성과가 없어
종료되고 말았지만 최근
우주 기술 경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대한민국도 지난 6월 21일
첫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고,
뒤이어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 발사에도 성공하면서
경쟁에 합류하였다.
또한 , 달 지표 아래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NASA는 유인기지를 세울 목표로
2024년까지 다시 한번 인류를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프로젝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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